쿠바를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일(현지시간) “신은 교회가 가난해지기를 바란다”며 성직자들이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빈자와 약자를 돕는 데 더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고 미국 CNN방송과 AFP통신이 보도했다.
교황은 쿠바 아바나 성당에서 집전한 기도회에서 “교회가 가난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富)는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우리의 가장 훌륭한 것을 빼앗아버린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특히 “교회로서는 나쁜(엄격한) 회계사가 좋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를 자유롭고 가난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성직자들이 가장 작고, 가장 버림받고, 가장 아픈 사람들에게 예산과 관리를 집중하는 것을 잊어버린다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앞서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열린 미사에서는 “이웃과의 단단한 결속 아래 신실하게 살라”면서 “섬김은 절대 이념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설파했다. 교황은 또 “남들을 섬기는 척하지만 사실 권력으로 득을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가장 빨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이들이 많다”고 비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 발언이 쿠바 관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중 강론이 끝난 뒤 교황은 피델 카스트로(89)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자택을 찾아 그와 40분간 환담을 나눴다. 교황청의 롬바르디 대변인은 “편한 분위기에서 교황이 올해 발표한 환경, 세계경제 문제에 대한 회칙을 포함해 여러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2012년 3월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쿠바 방문 때 질문 공세를 쏟아낸 것과 달리 온건한 태도로 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는 카스트로 전 의장의 가족 10여명도 배석했으며 아들 알렉스 카스트로가 촬영한 사진에서 카스트로 전 의장은 와이셔츠 위에 파란 체육복을 걸친 상태로 교황을 맞았다.
교황은 최근 작성한 회칙을 포함한 여러 저술, 신학서적 2권, 아르만도 로렌테 신부의 책과 관련 CD를 선물했다. 로렌테 신부는 70년 전 예수회 소속 고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 신분이던 카스트로 전 의장을 가르쳤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답례로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프레이 베투 신부와 자신의 대화를 담은 책 ‘피델과 종교’를 선물했다. 베투 신부는 공식적으로 종교를 인정하지 않던 쿠바에서 종교에 대한 금기 해제에 기여한 인물이다. 교황은 23일 미국을 방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24일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예정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우리는 이념 아닌 사람을 섬겨야”… 프란치스코 교황, 쿠바 혁명광장서 대중 강론
입력 2015-09-22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