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이중매매, 배임죄 적용 정당한가?… ‘50년 판례’ 대법 연구회 토론회

입력 2015-09-22 02:43
A씨가 B씨에게 3억원에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B씨는 계약금 1500만원을 먼저 송금한 뒤 중도금 1억원을 추가로 보냈다. 이때 C씨가 A씨에게 그 아파트를 5억원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B씨에게 채무불이행으로 물어줘야 할 손해배상금과 계약금까지 대신 내주겠다고 했다. A씨는 C씨에게 아파트를 팔 수 있을까?

현재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A씨는 C씨에게 아파트를 팔 수 없다. 그랬다간 배임죄로 형사처벌받게 된다. 50년 이상 법원은 ‘부동산 이중매매’를 한 매도인에게 배임죄를 적용해 왔다. 중도금이 넘어온 순간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부동산을 온전히 넘길 의무가 있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판례에 반기를 드는 학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법원 형사실무연구회(회장 김신 대법관)는 21일 부동산 이중매매의 배임죄 처벌이 옳은지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기존 판례에 반대하는 측은 우선 배임죄 적용이 법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행위의 주체로 삼고 있다. 쉽게 말해 지금 판례는 중도금을 받은 매도인을 매수인(타인)의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는 이전등기 의무는 ‘타인의 사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사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배임죄가 확장 적용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설명이다.

더 근본적으로 개인의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 국가가 형법으로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반대 측 발표자로 나선 문형표 변호사는 “설령 이중매매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민사법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반면 고려대 강수진 교수는 “중도금을 지급한 매수인은 해당 부동산을 취득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게 되고,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며 이중매매의 배임죄 처벌은 타당하다고 봤다. 또 대개의 경우 중도금을 지급한 매수인이 매도인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쟁점은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 중이다. 아파트를 팔기로 해 중도금을 받고도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배임죄로 기소된 사건이다. 1, 2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형사실무연구회장 김신 대법관이 주심을 맡고 있어 토론 내용이 판례 변경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