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6)씨는 2년 전 신혼집을 구하면서 보증금 2000만원에 월 임대료 60만원의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보증부 월세로 계약했다. 2억1000만원인 전세자금을 대출받기는 부담스러웠고, 착실히 급여를 모은 뒤 전세로 다시 계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달 재계약을 앞두고 이씨 아파트의 전셋값 시세는 2억6000만원까지 올라 있었다. 이마저 집주인은 전세가 아닌 월세로 재계약하기를 원했다. 월 임대료를 10만원 더 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고민 끝에 이씨는 인근 경기권에서 더 싼 월세 매물을 찾기로 했다.
폭등한 전세금에 떠밀려 살던 집에서 나오는 ‘전세난민’에 이어 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이동하는 ‘월세유랑민’이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수요군으로 등장했다. 월세유랑민은 살던 월셋집을 전세로 전환하거나 새 전셋집을 구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오르는 월세금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세입자들이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전세금을 받아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전월세 주택 거래량 가운데 월세(확정일자 미신고한 순수 월세 제외)가 차지하는 비중은 45.6%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그동안 월세 비중이 낮았던 서울의 상승폭이 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 결과 지난 1월만 해도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27.8%에 불과했지만 지난달에는 34.9%까지 뛰었다.
월세 매물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전세 매물이 귀해지면서 전세난민들까지 월세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21일 “과거에는 집주인들이 월세를 재계약할 때 보증금만 올리고 월 임대료는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그러나 전세난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월세를 찾는 기존 전세 세입자들이 늘었고, 이에 월 임대료도 함께 오르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전세난의 충격파가 월세 세입자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권 중개업소에는 월세 매물을 문의하는 수요자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한다. 전셋집은 포털 등을 통해 비교적 정확하게 시세를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월세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신고분 때문에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도 안양의 L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서울에서 찾아왔다는 손님 몇 분을 모시고 월세를 보러 다녔다”며 “그분들은 집주인이 월 임대료를 올려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경기권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세는 매물이 나오면 전화로 바로 계약을 결정하는 사례도 있지만 월세는 사정이 다르다”며 “온라인 시세와 실제가 다른 경우가 많고, 집주인과 보증금을 담보로 월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는 여지도 있어 직접 현장에 나와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기획] 싼 곳 찾아 떠도는 ‘월세유랑민’… 서울서 밀려난 세입자들 변두리나 경기권으로
입력 2015-09-22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