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총선 시리자 압승] 승부사 치프라스, 베팅은 성공했지만…

입력 2015-09-22 02:45 수정 2015-09-22 17:38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왼쪽)가 20일(현지시간) 그리스 총선에서 집권여당 시리자의 승리가 확정된 뒤 연정 파트너인 독립그리스인당의 파노스 카메노스 대표와 어깨동무를 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실시된 그리스 조기총선에서 국민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와 함께하는 강도 높은 국가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긴축 거부’라는 당초의 공약을 번복하고 유럽연합(EU) 채권단과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해 반발에 직면했던 치프라스와 시리자 정권은 내각 사퇴와 조기총선이라는 승부수를 통해 재신임을 받아냈다.

국정 운영에는 탄력을 받게 됐지만 산적한 과제가 만만치 않아 가시밭길이 예고된다.

그리스 내무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시리자는 35.47%를 득표해 28.09%를 획득한 신민주당을 제치고 승리했다. 접전이 예상됐으나 부동층 표가 시리자로 몰리면서 신민당을 압도했다.

이로써 시리자는 전체 300석 의석 중 1위 정당에 부여되는 50석을 포함해 145석을 확보했다. 단독정부 구성 요건인 과반에는 못 미쳤지만 기존 파트너인 독립그리스인당과의 협력 지속을 선언, 연립정부 구성에는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다만 연정 양당의 의석수는 기존 162석에서 소폭 감소했다.

75석을 획득한 제1야당 신민당에 이어 황금새벽당(6.99%·18석) 사회당(6.28%·17석) 그리스공산당(5.55%·15석) 포타미(4.09%·11석) 독립그리스인당(3.69%·10석) 중도연합(3.43%·9석) 등 모두 8개 정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이날 밤 수락연설에서 “오늘 승리에는 더 나은 내일을 원하는 그리스 국민의 꿈이 담겼다”면서 “정직과 근면으로 노동 계급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사회 전체의 부패를 척결하는 작업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6년간 계속된 경기침체를 벗어나는 것은 꽤나 힘든 작업이 될 것”이라며 강력한 긴축을 예고했다.

이번 승리로 치프라스 전 총리는 구제금융 합의에 완강히 반대해 온 시리자 내 급진파 의원들과 선을 그으면서 유럽 채권단에 ‘그렉시트’는 더 이상 없다는 믿음을 줬다. 더불어 국민의 재신임을 바탕으로 당내 장악력을 확고히 해 3230억 유로(약 430조원)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조치에 착수할 동력을 얻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트위터에 “시리자의 승리를 축하한다”면서 3차 구제금융 협약의 빠른 이행을 촉구했다.

하지만 투표율이 그리스 역대 최저치인 56.5%에 불과해 만연한 정치 불신과 무관심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게 됐다. 선거 기권율이 승자인 시리자의 득표율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높게 나온 것은 유권자들이 25%에 달하는 실업률과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는 그리스 경제위기를 풀어갈 정당을 선뜻 택하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또 ‘극과 극은 통한다’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긴축재정 반대’라는 하나의 가치로만 뭉쳤던 시리자와 독립그리스인당의 연정이 지난 8월 긴축 협상 타결 이후 내각 구성 정족수 충족 이외엔 어떤 존재가치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극적인 안정 대신 사회당이나 포타미와의 ‘가치 연대’를 통한 연정 확대라는 도전을 치프라스 2기 정부에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