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곤 납치살해女는 유인用… 폭행 연루 20대 男 죽이려했다

입력 2015-09-21 02:27
‘트렁크 살인’ 피의자 김일곤(48)이 피해 여성을 다른 살인극에 이용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도주하려는 여성을 죽인 뒤에는 당초 계획이 무산된 데 화가 나 시신을 훼손했다고 한다. 김일곤은 체포될 때까지도 표적인 20대 남성을 죽이려 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김일곤이 피해 여성을 노래방 도우미로 꾸며 노래방 운영자 김모씨를 유인한 뒤 살해할 계획이었다고 20일 밝혔다. 김일곤이 자신의 계획을 위해 지난 9일 충남 아산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에서 납치한 조모(35·여)씨는 이들과 무관했다.

20대 중반인 김씨는 지난 5월 2일 승용차를 운전하다 오토바이를 몰던 김일곤과 차선 문제로 시비가 붙었던 인물이다. 그는 김일곤이 멱살을 잡고 흔들자 손으로 밀쳤다고 한다. 경찰은 쌍방폭행 혐의로 입건한 두 사람 중 김일곤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김씨의 행동은 방어 목적이었다고 판단했다. 김일곤에게는 벌금 50만원이 부과됐다.

억울하다고 생각한 김일곤은 김씨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7차례나 찾아갔다. 벌금을 내달라는 요구를 거절당하자 칼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하루는 김씨가 김일곤에게 전화해 “이제 전쟁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시켜 김일곤을 미행하고 사는 곳을 확인했다. 김일곤이 고시원을 여러 차례 옮긴 건 김씨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김일곤은 김씨를 살해하는 ‘복수’로 전쟁을 마칠 계획을 세웠다.

성동구 노숙인 쉼터에서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은 김일곤을 ‘고집 센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번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계속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전과자라는 사실에 피해의식도 보였다고 쉼터 관계자는 전했다. 김씨와 갈등하기 시작한 6월 초쯤 김일곤은 그동안 억울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28명의 이름을 적었다.

김일곤은 김씨를 유인할 ‘여성’과 김씨에게 몰래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차’가 필요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일산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3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납치하려 한 것도 김씨를 살해하려는 계획 하에 진행됐다. 김일곤은 지난 9일 오후 2시쯤 충남 아산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조씨를 납치했다. 하지만 조씨가 저항하자 납치 2시간 만에 천안 두정동 인근 국도변에 세운 차 안에서 목 졸라 죽였다.

우발적으로 조씨를 살해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김일곤은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범행 다음날 시신을 훼손했다. 김일곤은 마지막으로 김씨를 살해하고 자살할 생각으로 안락사 약을 사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19일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도 김씨의 실명을 언급하며 “내가 김씨의 희생양이 됐다. 김씨를 죽이기 위해서”라고 소리쳤다.

김일곤은 19일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김일곤에게 살인예비 혐의도 추가하기로 했다. 김일곤은 경찰 조사에서 “피해 여성을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 피해 여성에게 미안하다”고 진술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