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조기 총선이 20일(현지시간) 실시됐다. 지난 1월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권을 출범시킨 총선 이후 8개월 만이다. 유럽연합(EU) 등 국제 채권단과의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비등한 그리스 국민들의 불만 속에 반년 전 시리자의 완승과는 사뭇 다른 박빙의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끄는 시리자와 국방장관을 지낸 반젤리스 메이마라키스 임시대표가 이끄는 중도우파 신민주당 가운데 어느 쪽도 압도적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여론조사 기관 알코의 조사에서는 시리자가 30.7%대 30.3%로 근소하게 앞섰지만 메트론사 조사에서는 신민당이 31.9%를 얻어 31.6%의 시리자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펄스사 조사에서는 아예 양당 공히 30.7%로 동률을 이뤘다.
이는 980억 달러(약 113조8700억원)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경제개혁 조치를 실시하기로 한 지난 8월 그리스 부채 협상 타결 이후 국민들이 느끼는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번 조기 총선 자체가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을 상쇄하고자 하는 치프라스 전 총리의 승부수이자 시리자 정권에 대한 재신임 투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10%가 넘는 지지율 차이를 보였던 지난 7월의 각종 여론조사와 비교했을 때 정권 탈환을 노리는 신민당의 선전이 눈에 띈다.
영국 BBC방송은 19일 양쪽 모두 단독정부를 구성할 만한 과반의석 획득엔 실패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채권단과의 협상에 따른 후속 조치를 책임지고 이행해나가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치적 불안정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총선 승패도 승패지만 연립정부 구성 과정에서 정국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봤다.
특히 집권 전 공약을 단념하고 구제금융과 재정 긴축을 맞바꾼 치프라스 전 총리에 대한 강성 좌파의 외면이 연정 구성의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시리자가 1위를 하더라도 연정 파트너 물색이 마땅치 않은 반면 신민당의 경우 사회당, 포타미 등과 비교적 수월하게 연정을 꾸릴 가능성이 높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신민당과의 대연정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양당은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자신들이 그리스를 경제위기에서 해방시킬 유일한 해답임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18일 안테나TV에 출연해 “거대한 국가부채로부터 (그리스라는 배에) 밧줄을 걸어 예인해낼 것”이라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지난 6월 사임한 안토니스 사마라스 전 대표의 뒤를 이어 신민당의 반격을 이끌고 있는 메이마라키스 임시대표는 시리자 정권의 조기 총선 승부수를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정치실험”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치프라스 정권의 임기를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양당의 치열한 선두공방 뒤에서 3위를 지키고 있는 네오나치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의 조용한 급부상도 주목된다. 일리아스 카시디아리스 황금새벽당 대변인은 난민들이 터키에서 그리스로 입성하는 경로인 코스섬 유세에서 “시리자는 코스섬을 파키스탄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에게 투표한다면 코스섬은 다시 그리스가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난민 경로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정학적 특성상 선거 결과 황금새벽당이 약진할 경우 그리스의 반난민 정서에 편승, 난민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리스 8개월 만에 조기총선] 치프라스의 두 번째 도박… 연정 협상이 운명 가른다
입력 2015-09-21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