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증오형 범죄’ 확산되지 않도록 대책 세워야

입력 2015-09-21 00:18
최근 충남 아산의 한 대형마트에서 발생한 3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은 사회증오형 범죄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피의자 김일곤(48)이 지녔던 쪽지에는 자신에게 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28명의 이름이나 직책이 적혀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쪽지를 그가 전형적인 사회증오형 범죄자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여긴다. 쪽지에는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사, 돈을 갚지 않은 식당 여사장, 자신을 조사했던 형사나 당시 참고인, 재판장 등의 명단이 포함돼 있다.

사회증오형 범죄는 사회 빈곤층이나 소외된 사람이 사회 전체에 대한 원망을 사회적 약자에게 푸는 것을 말한다. 원래 증오범죄(hate crime)는 보통 인종, 종교, 출신지역, 성적 지향 등이 다른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나 편견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를 말한다. 사회증오형 범죄는 이와 달리 범행 대상을 무작위로 선정할 경우 ‘묻지마 범죄’에 가깝다. 그러나 무작위라도 범행은 대체로 약자를 겨냥한다. 이번 사건 역시 소수집단인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증오범죄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는 등 사회에 대해 쌓인 불만이 이번 사건의 범행 동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소외되고 차별받는다는 억울함이 범죄의 화약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는 집단따돌림, 혐오발언 등 증오범죄를 촉발할 인화물질이 사방에 널려 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혹은 무심코 내뱉는 폭언, ‘갑질’과 폭행, 심지어 불친절까지도 강한 전염성을 지닌다. 손상된 자존감과 분노는 타인들에 대한 분풀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증오범죄가 증오범죄를 낳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특정 인종이나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도 ‘증오표현’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증오범죄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와 일터, 그리고 군대에서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