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태] 못 떠난 ‘학교 앞’… 싼 방 없나요

입력 2015-09-21 02:26

성균관대 3학년 김모(26)씨는 3년째 서울 명륜동 학교 앞 원룸에 살고 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40만원. 이 일대 전셋값은 20㎡에 6000만∼9000만원이나 하지만 물량이 거의 없다. 김씨는 부모님께 돈을 받아 월세를 내는데 한 달 생활비 80만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김씨 집 근처에는 취업준비생 이모(29)씨가 산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2만원인 원룸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씨는 1년째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과외(월 40만원)와 편의점 알바로 월세와 생활비를 댄다. 그는 “토익 학원비와 식비 등이 만만찮아 집세 부담에 허리가 휜다”고 했다.

지난해 말 취업에 성공한 회사원 김모(29)씨의 집도 이 동네다. 직장이 있는 여의도까지 지하철로 40분 넘게 걸리지만 학생일 때 살던 원룸에 계속 머물고 있다. 23㎡ 남짓한 그의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6만원이다. 여의도나 마포의 오피스텔은 2배 가까이 비싸 포기했다. 김씨는 “결혼 전까지는 여기에 살면서 최대한 돈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학생과 취업준비생, 갓 취업한 직장인까지 몰려 대학가 ‘주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세는 물량이 없고 월세는 수요가 넘치니 집주인들은 갈수록 임대료를 올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청년 주거 안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치솟는 월세=집주인들은 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높이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올린다. 보증금을 1000만원 낮추면 월세는 보통 10만원 뛴다. 서울 고려대 근처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최모(33)씨는 “3년째 살고 있는 원룸 주인이 월세를 올려 달래서 고민 중”이라며 “다른 곳을 알아봤는데 3년 전보다 15만원씩 올라 있어 그냥 올려주려 한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가 부동산 관계자는 “원래 집주인이 왕이지만 대학가 집주인은 황제 수준”이라며 “그나마 자금이 있는 직장 초년생에 비하면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은 집을 구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올 초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발표한 ‘대학생 원룸 주거실태 조사’ 결과 수도권 대학생들은 월평균 47만원(관리비 포함)을 월세로 내고 있었다.

◇청년 주거 대책은?=서울의 자치구 중 11곳에서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한 ‘룸 셰어링’을 시행하고 있다. 집을 가진 노인과 집이 필요한 대학생을 연결해 싸게 살 곳을 마련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 룸셰어링을 통해 입주한 대학생은 143명뿐이다. 낯선 학생과의 동거를 꺼리는 노인이 많아서다.

서울대 총학생회와 협동조합 ‘큰바위얼굴’도 최근 40평대 아파트를 전세로 임대해 학생들이 월 20만원씩 내고 공동 거주케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숙사 수용률이 11%에 그치는 고려대는 총학생회가 나서서 기숙사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의견을 조율 중이다. 청년단체 민달팽이유니온과 연세대 총학생회도 지난달 공공임대주택 등 정부의 주거복지 서비스를 안내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각각 ‘대학생 전세임대주택’과 ‘대학생 희망하우징’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은 “전세임대주택은 전세 자체를 구하기가 어렵고 희망하우징은 공급 물량이 1100여 가구에 불과해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며 “몸 하나 누일 곳도 찾기 힘든 청춘을 위해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