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문흥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일대일로

입력 2015-09-21 00:20

비무장지대의 지뢰폭발 사건과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8·25 남북 고위급 접촉의 극적인 타결과 이산가족 상봉 합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 실험 재개 위협 등 일련의 사건은 남북관계의 고질적인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남북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남북한의 상호신뢰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여 과정에서 보여준 한·중의 밀착된 모습에 북한은 더욱 고립감에 빠져드는 것 같다. 최근 북한의 강경한 태도는 그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임시방편이 아니라 남북한의 지속가능한 신뢰 증진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박근혜정부가 주창해 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재충전해야 한다. 신뢰프로세스의 핵심인 약속, 상호 이익, 미래 비전의 단계적 공유를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비정상적인 북한 정권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분노에 앞서 조금만 더 참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강하다. 한·중 두 정상이 천안문에서 역사적 사건을 연출한 만큼 최악의 궁지에 몰린 북한의 입장도 조금은 헤아려야 한다. 예측 불가한 문제아의 돌출 행동을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 범위를 한반도에서 국제사회로 확장해야 한다. 이는 북한체제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공영에 유용한 국제사회의 협조체제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마침 금년 하반기엔 중요한 외교 일정들이 예정되어 있다. 9월 미·중 정상회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11월 개최를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담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국제화를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서도 북한을 협공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도모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셋째, 지난 2일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일대일로의 유기적 결합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실화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은 대륙과 해양의 새로운 실크로드 구축을 의미하는 일대일로를 ‘국가대전략’으로 삼고 있다. 시진핑이 앞장서서 단순한 물류, 교통망 건설이 아니라 국가 간의 정치·경제·문화적 연계 강화를 통해 상생의 운명공동체를 구현하자고 역설한다. 우리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일대일로의 연계 과정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접목시킬 수 있는 여지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의 상생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일대일로’라고 명명하고 싶다. 남북한의 신뢰 구축이 어려울 때는 이를 우회해서 국제사회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는 곧 한반도 통일의 대외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일대일로를 측면 지원하는 차원에서 통일 준비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필요하다. 이는 기회가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자신을 과시하지 말고 좀 더 낮은 자세로 내실을 기하자는 덩샤오핑의 전략이다.

도광양회의 지혜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막강한 중국도 없었을 것이다. 통일 준비도 이런 전략이 필요하다. 통일이 절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부가 표방하는 ‘모두가’ 행복한 통일을 위해서다. 통일이 국가, 정권만의 일이어서는 안 되며 우리 생활 속의 통일, 특히 젊은이들의 꿈과 미래가 연계된 통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일대일로, 대내적으로는 통일 준비의 도광양회가 더욱 절실하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