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팔거나 몸 팔거나… 난민 아동 앞에 놓인 현실

입력 2015-09-19 03:42
세르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헝가리 뢰츠케 검문소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경찰들이 난민을 통제하고 있다(맨 위). 하지만 헝가리 정부가 국경폐쇄를 시작한 지 사흘째인 17일 같은 장소가 텅 비어 있다(가운데). 헝가리의 국경폐쇄 뒤 크로아티아 쪽으로 우회한 난민들이 17일 크로아티아 토바르니크 인근 난민캠프 입구에서 쉬고 있다. EPA로이터연합뉴스

“여기 처음 왔을 때는 학교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잘 곳도, 일자리도 구할 줄 알았죠.”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역 주변을 배회하는 이집트 난민 소년 하미드는 매주 고향에 있는 엄마한테 안부 전화를 건다. 하지만 엄마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거짓말을 한다. 사실대로 마약을 팔며 연명하고 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어서다.

하미드는 최근 마약을 팔다 붙잡혀 감옥에 다녀왔다. 근처 연못에서 몸을 씻고 버스에서 잠을 청한다. “막상 와보니 생각과 달랐어요. 여기 우리 같은 애들은 구걸을 하거나 마약을 팔거나 몸도 팔아요.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여기 안 왔겠죠.”

유니세프에 따르면 유럽에서 올 상반기 난민 신청을 한 어린이는 10만6000명이다.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왔지만 혼자 온 아이도 적지 않다. 영국 BBC 방송은 17일(현지시간) 혼자 온 난민 어린이들이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시칠리아섬 등 난민 아이들이 처음 밟는 유럽 땅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 남부 지역이 그렇다. BBC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정부들이 재정과 일손이 모자라자 사설 센터에 난민 아이들을 떠넘긴 채 방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시설에 통역사 등 전문 인력이나 위생시설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소홀한 관리·감독에 불안해진 아이들은 결국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남부지역과 함께 로마 테르미니역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소굴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은 마피아 조직 밑에서 마약팔이를 하거나 30∼50유로(약 4만∼7만원)에 몸을 팔기도 한다. 유럽에 오는데 들어간 5만∼6만 유로(약 6600만∼8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밀입국 업자에게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난민 어린이센터 자원봉사자는 “아이들이 절박하다는 점을 알고 (마피아들이) 돈을 미끼로 내건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난민들의 유럽행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애초 난민에 우호적이었던 크로아티아도 1만명 넘게 밀려오는 난민 앞에 세르비아와의 국경지대 길목 8개 중 7개를 폐쇄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자국에 들어온 이민자들을 다시 헝가리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헝가리가 이에 강력 항의하고 슬로베니아 역시 이날 난민 150명을 태운 열차를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멈춰 세우는 등 난민에 대한 냉대는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3일 특별정상회의를 열어 분산수용안을 재논의키로 했다.

한편 터키 서부 이즈미르주의 에게해 해안에서 난민보트 전복 사고로 숨진 4살 여아가 또 발견됐다고 터키 관영 아나돌루 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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