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에 직장이 있는 김지영(27·여)씨는 점심시간이면 담배연기를 피해 길을 멀리 돌아간다. 평소 다니는 교보생명과 KT 사옥 사이 골목길은 이즈음엔 ‘식후땡’을 즐기는 흡연자들이 내뿜는 연기로 매캐하다. 건물 안이나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자 외진 곳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다. 흡연자가 모인 거리를 지나는 일은 비흡연자에겐 고역이다. 김씨는 “옷에 담배 냄새가 밸까봐 흡연자가 몰려 있는 곳을 피해 다닌다”고 했다.
금연구역이 늘면서 흡연자들이 거리로 밀려나오자 ‘길거리 간접흡연’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비흡연자들은 공공연히 간접흡연에 노출되고 통행권마저 침해받고 있다.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만든 흡연부스는 답답한 구조 때문에 흡연자들이 외면하면서 제구실을 못하는 실정이다. 흡연부스 내부가 아니라 그 주변이 흡연구역이 돼 버리고 있다.
2013년 국민건강진흥법 시행으로 면적 150㎡ 이상인 음식점이나 커피숍 등 공중이용시설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지난해엔 100㎡ 이상 음식점과 PC방이, 올해부터는 면적에 상관없이 모든 음식점이 금연구역이다. 덕분에 실내 간접흡연은 거의 사라졌다. 반면 실외 간접흡연은 되레 심해졌다. 금연구역 확대 취지와 달리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기보다 피울 수 있는 장소로 몰리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골목골목은 ‘너구리굴’이다. 건물 밖에선 흡연자가 비흡연자와 제대로 분리되지 않지만 건물 내외부에 흡연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금연빌딩에서 근무하는 흡연자 박모(30)씨는 “담배를 피우러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 일도 구차하다. 시간이 많이 걸려 상사 눈치도 봐야 한다”며 “흡연 장소가 마련되면 길거리에서 민폐도 끼치지 않을 텐데”라고 말했다.
흡연자에게 흡연 장소를 제공하면서 비흡연자를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흡연부스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2013년 서울역 앞에 설치된 흡연부스는 잠정 폐쇄된 상태다.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 담배를 피워야 해 흡연자들이 외면한 탓이다.
18일 딸과 함께 서울역을 찾은 호주인 로버트(33)씨는 눈살을 찌푸렸다. 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뛰듯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방금 지나간 광장에는 흡연자들이 내뿜는 담배연기와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그는 “서울에 대한 첫인상이 나빠진 게 사실”이라고 했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건물 옥상에 흡연부스를 설치해 흡연자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도록 홍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대안으로 지난해 9월 청사 4층에 옥외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돼 직원과 민원인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기획] 거리마다 ‘뻐끔뻐끔’ 행인들은 괴롭다… 금연구역 확대에 간접흡연 불똥
입력 2015-09-19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