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살인’ 김일곤, 시신 싣고 전국 활보

입력 2015-09-18 03:12
‘트렁크 살인’ 용의자 김일곤이 17일 서울 성동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성수지구대 김성규 경위와 주재진 경사가 17일 오전 성수2가3동 거리에서 주차된 차량 뒤에 숨어 있던 김일곤을 붙잡아 끌고 나오고 있다(왼쪽 사진). 김일곤은 2분여 격투 끝에 체포됐다. 몸싸움 중 김일곤이 흉기를 꺼내자 경찰관들은 주위를 향해 “살인범 김일곤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외쳤고 시민 2명이 합세해 검거했다. 한 시민은 김씨가 들고 있던 흉기를 직접 빼앗았다.연합뉴스
‘트렁크 살인’ 용의자 김일곤(48)이 납치·살해한 여성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싣고 충남 천안부터 서울∼속초∼부산∼울산∼서울로 이동하며 사흘간 전국을 누볐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서 차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지 8일 만인 17일 약 4㎞ 떨어진 동물병원에 나타나 “개 안락사약을 달라”며 흉기 난동을 부린 뒤 검거됐다.

경찰서로 압송되면서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나는 잘못이 없다. 살아야 한다”고 소리쳤고, 조사 과정에선 여성 증오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전과 22범에 척수장애 6급이며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경찰은 증오범죄나 사이코패스 범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의료용 복대에 쌍둥이 칼 차고=김일곤은 이날 오전 8시30분 성동구 동물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간호사가 “9시에 업무가 시작되면 오라”고 하자 30분쯤 뒤 다시 찾아와 “푸들을 키우는데 지금껏 1000만원이나 들었다. 안락사를 시키려 하니 우리 집에 가서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수의사가 “안락사약이 없다”며 대형병원을 안내해주자 밖으로 나갔다.

오전 10시쯤 그는 다시 찾아왔다. 한참 푸들 얘기를 늘어놓다 갑자기 길이 28㎝ 칼을 꺼내 들고 “안락사약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수의사와 간호사 2명은 진료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채 112에 신고했고, 김일곤은 “전화하지 마”라고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출동한 경찰은 1㎞쯤 떨어진 거리에서 격투 끝에 김일곤을 체포했다. 그는 ‘쌍둥이 칼’로 불리는 독일제 주방용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다. 몸에 두른 치료용 복대 속에 칼 두 자루, 주머니에는 커터 칼이 들어 있었다.

◇트렁크에 시신 싣고 천안∼서울∼속초∼부산=김일곤은 지난 9일 오후 2시9분쯤 충남 아산의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에서 투싼 차량에 타려던 주모(35·여)씨를 차와 함께 납치했다. 그는 “천안 두정동에서 주씨가 용변을 보겠다기에 내려줬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도망치려 했다”며 “주씨를 낚아채 붙잡으려 하자 모욕적인 말을 해 목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당초 차와 휴대전화만 빼앗을 생각이었다”고 했지만 “식자재 배달 일을 할 때 여자들에게 못 받은 미수금이 많았다”며 여성 혐오를 암시하는 진술도 했다.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서울, 강원 속초·양양, 부산, 울산 등지로 돌아다닌 이유도 모호하다. “답답한 마음에 서울을 거쳐 강원도로 떠났다”거나 “주씨 주민등록증 주소가 경남 김해여서 가까운 곳에 묻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부산으로 갔다”는 식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이동 중 시신 여러 곳을 훼손한 뒤 지난 11일 새벽 다시 서울로 올라와 자신이 거주하던 광진구 고시원에 들러서 짐을 챙겨 나왔고, 오후 2시40분쯤 성동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신에 불을 붙인 뒤 달아났다.

◇여성 혐오범? 장애수당·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온 사이코패스?=김일곤은 오물이 묻은 회색 티셔츠와 파란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며칠간 머리를 감지 못한 듯 꾀죄죄했다. 동물병원 간호사는 “걸음걸이가 어색하고 헛소리를 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근 노점상은 “16일 길가 벤치에서 그가 힘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 것 같다”고 했다. 반면 경찰 조사에서는 갑자기 큰 소리로 화를 내고 흥분하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다.

특수강도·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전과 22범인 그는 척수장애 6급 판정을 받아 월 3만원 장애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 등 월 66만원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서울 광진·동작·영등포구 고시원을 전전했다. 검거 직전에는 경기도 하남시 등에서 숨어 지냈다고 진술했다.

김미나 신훈 심희정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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