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 서류마감 끝났는데 일자리박람회는 왜?… 경제부총리까지 나선 ‘청년 20만+창조박람회’ 속사정

입력 2015-09-18 02:39 수정 2015-09-18 11:08

정부가 청년고용확대 정책을 기업 ‘팔 비틀기’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기업 채용 현실과 엇박자가 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1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 시작을 알린 전국 차원의 대기업 채용박람회 ‘청년 20만+ 창조박람회’가 대표적이다. 지방에 있는 청년들에게도 대기업 취업의 기회를 넓히겠다며 추진한 이 박람회에 참여하는 대기업 상당수의 내년 신입사원 채용(하반기 공채) 접수가 이미 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청년 고용절벽 해소대책’ 발표 이후 한 달여 만에 가시적 결과물을 요구하면서 생긴 기현상이다.

◇대기업 서류전형 다 끝나고 열리는 채용박람회?=정부와 재계는 지난 7월 27일 정부의 청년 고용절벽 해소 대책의 일환으로 ‘청년 20만+ 프로젝트’ 협약을 맺었다. 정부는 이후 임금피크제 확산 등의 내용을 담은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하면서 줄기차게 재계의 화답을 요구했고, 주요 대기업들은 지난달 잇달아 청년채용 확대 방안을 제시했다. 16일부터 시작한 전국 6대 권역별 ‘청년 20만+ 창조박람회’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사전에 치밀한 조율이나 협의 없이 정부의 압박 속에 추진됐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주요 대기업들의 하반기 공채, 즉 내년에 입사할 신입사원 공채 일정은 대부분 9월 초에 시작됐다. 이 때문에 창조박람회에 참여하는 상당수 주요 기업은 이미 서류 접수가 마감된 상태다. 1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첫 박람회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롯데그룹 계열사는 17일 하반기 공채 서류 접류 마감을 하루 앞두고 박람회에 참여했다. 이날 참여한 두산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아직 서류 전형이 진행 중이다. 덕분에 벡스코 박람회에서는 현장 면접이나 입사 지원서 상담 등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23일 대구에서 창조박람회를 여는 삼성그룹은 이미 지난 14일 서류 전형이 마감됐다. 다음 달 21일 광주에서 창조박람회를 주관하는 현대차는 박람회 개최 전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와 인·적성검사까지 끝난다.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된 일이다. 대기업의 채용 계획은 연간 단위로 이뤄지며 여기에는 그해 경영 상황이 치밀하게 계산돼 반영된다. 7월 말 갑자기 그해 하반기 채용 계획을 다시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기업들이 청년 채용확대 계획을 내놓으면서 대부분 내년 이후 3∼5년간 계획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9월 채용박람회를 강행한 것은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으려는 전형적인 관치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구박람회부터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면서 “다만 지역에 있는 청년들은 주요 대기업의 채용 관련 설명을 듣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 같은 박람회도 접할 기회가 없다. 이런 긍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 넘은 정부의 민간기업 채용 간섭=정부의 민간 압박은 이뿐 아니다. 지난달 삼성, 현대, LG, 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이 청년 고용증대 계획을 잇달아 발표한 과정에도 정부의 개입은 계속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회사가 최종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정부(기획재정부) 측에서 내용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채용규모 등) 내용에도 개입을 하더라”면서 “그런 식이 되다 보니 기업 스스로 진정성 있게 고민해서 결과를 내기 더 어렵다”고 말했다. 창조박람회 추진 과정에서도 참여 기업들에 채용 일정 등을 박람회 일정에 맞춰 변경하거나 협력업체 채용 규모 등을 조정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은 시장에 맡겨서만은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해당 기업들에 (서류전형) 일정 등을 연장할 수 없는지 등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는 대기업을 통해 확산시키려는 고용디딤돌 프로그램도 졸속 추진될 우려가 있다. 정부가 대기업 직접 채용을 당장 늘리지 못하는 대신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에 속도를 붙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디딤돌은 대기업들이 우수한 훈련 시설을 활용해 청년 인력을 직접 교육하고 이후 협력사 등의 인턴십·취업을 알선하는 프로그램으로, 삼성 현대차 SK 등이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각 기업의 협력사 상황과 임금체계 등에 따라 매우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으면 자칫 청년 인턴 프로그램 정도로 전락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 청년 일자리 예산을 올해보다 3000억원 늘린 가운데 증액분의 14%를 고용디딤돌 프로그램 지원(418억원)에 배정했다. 이 예산은 대기업이 고용디딤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을 실비로 지원하는 데 쓰인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