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 치아라.”
팔순을 훌쩍 넘긴 경남 통영의 노화가 전혁림(1915∼2010)의 반응은 매몰찼다. 2000년대 초반이다. 그 시절 주부 신영숙(75)씨는 소반, 함지박, 궤 등 생활가구를 모았다. 강렬한 오방색의 색채 추상화가의 그림을 목가구에 그리면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주저하다 말을 꺼냈던 터였다. 남편 김이환(80·현 이영미술관장)씨는 당시 공직에서 은퇴한 후 양돈사업을 했었다. 부부는 10년 넘게 그의 작품을 구입하며 인연을 맺어온 사이였다.
시간이 흘러서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노화가가 말했다.
“정미 엄마(신씨), 그 소반 한번 가져와보소.”
경기도 용인 이영미술관이 전혁림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 회고전 ‘백년의 꿈’전을 갖고 있다. 지난 15일 미술관에서 만난 김 관장은 “전혁림의 평면 회화만 보면 절반만 본 셈”이라며 또 다른 전시공간을 안내했다. ‘신영숙컬렉션’이라는 간판이 붙었다. 전통 목가구들이 즐비했다. 궤, 소반 등에는 하나같이 전 화백의 오방색 추상이 그려져 있다. 신씨 제안으로 탄생한 ‘전혁림의 목가구 입체화’다.
메인 전시장에는 전 화백의 트레이드마크인 코발트블루를 주조색으로 한 통영의 항구 풍경, 오방색의 비구상이나 추상 대작들이 대거 선보이고 있다. 단색화가 유행하는 시기라 원색이 주는 생동감이 오히려 신선하다. 통영항 시리즈는 2005년 불시에 이영미술관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이 반해서 구입한 뒤 청와대에 걸어놓았던 그림으로 유명하다. 작품을 설명하는 김 관장은 흥이 나 보였다. “우리가 해양국가라는 걸 이 힘찬 푸른색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외국 원수에게 아마 가장 많이 보여준 그림일 겁니다.”
작고 작가의 회고전은 많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화가와 컬렉터 간 20여년 인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김 관장 부부는 전 화백 생존시 한 달에 한 번꼴로 통영을 찾았고 지속적으로 그림을 구매했다. 컬렉션 행위는 후원에 가깝다. 전 화백이 말년 5년에 걸쳐 제작한 ‘만다라’는 이들에게 각별하다. 1050개나 되는 목기에 그린 추상화를 모자이크처럼 배열한 대형 설치작품이다. 같은 크기의 목기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신씨는 그렇게 목기를 샀을 때마다 그걸 들고 주말이면 통영으로 달려가 그림을 그려 받았다.
부부는 채색 동양화가 박생광(1904∼1985) 화백의 그림을 사면서 컬렉터로 발을 디뎠다. 김 관장의 고교 선배라는 인연으로 한 점, 두 점 사주다 후원자가 돼버렸다. 전 화백의 그림을 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박 화백 덕분이다. 박 화백은 전통 수묵이 아니라 강렬한 원색의 채색화로 그린 ‘명성황후’ 같은 역사화로 잘 알려져 있다. 우연히 TV에서 본 전 화백의 그림이 유화로 그려진 오방색 그림 같아 강하게 끌렸던 것이다. 2001년 개관한 이영미술관은 두 화백의 그림을 뼈대로 하고 있다. 12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선 신달자, 정현종, 문태준 등 시인 36명이 작품에 시를 바친 ‘화시전’도 꾸몄다.
용인=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전혁림 100주년 기념전 여는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 부부 “전혁림 평면 회화만 봤다면 절반만 본 셈”
입력 2015-09-18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