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추석선물은 통치행위다. 명절을 맞아 소외계층엔 배려의 의미를 담아 위로하고, 사회 주도층엔 국정 협력을 당부하는 측면이 크다. 격려 또는 위로, 배려의 의미가 크다는 의미다. 대부분 선물은 1년에 두 차례, 설과 추석에 각계각층에 전달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명절 선물은 통상적으로 임기 첫해와 마지막 해에 그 대상자가 가장 많았다. 대통령의 추석선물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대통령이 선택하는 선물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하지만 이를 통해 대통령의 선물관(觀), 나아가 정치철학도 짐작할 수 있어서다.
지역 안배 농산물 단골메뉴
박 대통령은 올해에도 추석을 앞두고 사회 각계의 주요 인사와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 계층에 선물을 보냈다. 박 대통령의 추석선물은 우리 농산물인 햅쌀 흑미 찰기장 잣 찹쌀로 구성됐다. 이번에는 ‘5곡 세트’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우리 농산물”이라며 “한가위를 맞아 소중한 가족, 친지, 이웃과 따듯한 정을 나누고 소망하는 일 모두 이뤄지길 기원하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에는 육포 찹쌀 잣 등 3가지 세트를 선물했고 지난해에는 육포와 대추, 잣을 보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낸 추석선물에는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의 의미에 맞게 우리 농축산물 애용 및 국민대통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 농산물의 판로 개척의 취지도 있다.
농산물의 원산지는 강원 경기 경남 전남 등 지역별 안배가 필수다. 첫해 선물은 전남 장흥, 대구, 경기도 가평이 원산지였고, 지난해에는 강원도 횡성과 경기도 가평, 경남 밀양이었다.
농산물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위탁보호 아동들에게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전자책 또는 어학 학습기 등이 전달된다. 평등교육, 소외계층 지원 등 복지에 관심이 많은 박 대통령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불교계 인사들에게는 육포 대신 호두 등 다른 품목이 들어간다.
대상자는 배려 차원에서 비공개
청와대는 올해 박 대통령의 추석선물 배포 사실을 전하면서도 선물을 받는 대상자와 그 규모는 지난해에 이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혹 이를 받지 못하는 인사들이나 계층이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는 차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최대한 많은 분에게 선물을 보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고려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취임 첫해 선물을 받은 사람은 9000여명이었다. 지난해는 이보다 조금 줄었고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으로는 전직 대통령과 5부 요인, 정계 원로, 국회의원, 장차관, 경제단체장, 국가유공자, 종교·언론·여성·교육·문화예술·노동계 인사들과 시민단체 등이 포함된다. 독거노인, 가정위탁보호아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배려계층 역시 빠질 수 없는 대상이다. 여기에 해외파병 부대장 및 순직 경찰관, 소방관, 군 장병 등도 포함된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에도 본인이 직접 챙겨야 할 인사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골라 선물했다고 한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청와대 참모들이 여러 의견과 건의를 종합해 결정한다. 대통령 선물이라고 해서 특별하거나 가격이 비싼 것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올해 선물 가격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지만 2만∼3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선물은 부담이 없으면서도 요긴하게 사용할 물건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책 ‘나의 어머니 육영수’에서 어릴 적 선물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박 대통령은 “친척이 해외 여행길에 산 것이라며 저희들(박 대통령 남매)에게 선물을 줄 때면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친척을 나무랐다. 남이 안 가진 것을 갖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을뿐더러 건전한 시민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 추석 명절 직후에는 새누리당 의원 전원에게 청와대 손목시계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봉황과 박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남성용, 여성용 시계 한 세트였다. 한가위의 풍성함을 고려해 곡식과 견과류 등이 추석선물의 단골메뉴지만, 설 명절에는 떡국 떡 등이 반드시 포함된다. 특히 설 명절에 떡을 담은 유리그릇은 청와대 문양이 찍혀 있어 인기가 많다.
시대 흐름 따라 대통령 선물도 변화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시대나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대통령의 선물도 변화했다. 1970∼80년대는 권위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선물이 주를 이뤘고, 선물을 받는 대상자도 대통령 측근과 정·관계 인사 등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에는 소박한 선물로 바뀌고 그 대상도 대폭 확대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엔 빈민층에 담요를 주로 선물했다. 박 대통령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로 인삼을 주로 보냈다. 인삼을 담은 나무 상자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이 때문에 ‘봉황 인삼’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명절에는 이런 봉황 인삼을 주로 보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명절에 격려금을 주로 전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멸치잡이 사업을 하던 부친이 보내준 고향 거제도 멸치(일명 YS멸치)를 주로 선물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멸치가 단골 선물메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 전남 신안의 김, 한과 녹차 등을 주로 선물했다. 찻잔 세트도 포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석선물은 술이었다. 복분자주 소곡주 문배주 이강주 등 해마다 전국 각지의 민속주를 선택해 각계에 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물은 황태 대추 김 햅쌀 버섯 참기름 등으로 이뤄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은 2003년 민주당 대표 시절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선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정 상임고문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은 금박 봉황이 박힌 인삼, 수삼을 보내왔다”고 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100만원인가 200만원인가 줬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죽으나 사나 멸치”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선물에 대해선 농담을 섞어 “시시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역대 대통령들의 명절 선물] 朴대통령 농산물 선호… YS는 ‘죽으나 사나 멸치’
입력 2015-09-19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