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지다’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그 중 타동사로 쓰일 때 ‘지다’는 의미는 어떤 책임이나 임무를 맡는 것을 뜻한다.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과 임무를 먼저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만 더 크게 들리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권리만 앞세우고 책무를 등한시한다면 사회는 건강해질 수 없다.
자본주의 경제 특성상 부(富)와 빈(貧)은 항상 문제로 떠오른다. 사회복지 수준이 적정선을 유지하려면 납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만약 세금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외면한다면 우리의 권리 또한 충족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세금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된 모든 문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기 전에 권리부터 주장하려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인 학교 공동체만 하더라도 사제간에 존경심과 사랑이 사라지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학생이 스승을 향한 도리와 의무를 잊은 채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해서 빚어지는 현상들은 우리를 실망시킨다.
마태복음 10장 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는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 즉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 이것은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나랏일을 하겠다고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왔다가 큰 망신을 당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지도자가 되고 나랏일을 하겠다는 이들이 과거에 자신이 져야 했던 십자가,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해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정당히 내야 하는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자신이나 자식에게 주어진 병역의 의무 역시 반드시 져야 하는 십자가다. 이런 십자가를 외면하고 살다가 국민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충실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한 사회,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무한한 정보의 나눔이 우리 모두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자신의 권리만을 찾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 내가 감당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피는 지혜를 발휘해 더욱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최범선 목사(용두동교회)
[시온의 소리-최범선] 십자가를 지는 지혜
입력 2015-09-18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