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9월 20일] 용서의 지혜

입력 2015-09-19 00:40

찬송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305장 (통 405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베소서 4장 32절


말씀 : 소설가 윤흥길의 작품 ‘낫’의 주인공 엄귀수는 어머니 유언을 따라 아버지 산소가 있는 고향 산서면을 찾아갑니다. 고향에 가서야 그는 자기 이름이 배귀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배낙철은 6·25전쟁 때 좌익에 가담해 동네 사람들을 무차별 살육한 인물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귀수를 보자 복수하겠다며 달려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최 교장이 중재자로 나섰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그가 한 일을 보지 못했다”고 울부짖는 귀수에게 최 교장은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동네 사람들에게 “귀수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원한을 풀라”고 호소합니다. ‘낫’이란 소설을 통해 작가 윤흥길은 ‘용서만이 화해의 길’이란 메시지를 전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가 담겨 있습니다(마 18:24∼35). 만 달란트 빚진 종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한 달란트가 노동자의 15년 품삯에 해당하니 만 달란트는 상상할 수 없는 큰 금액입니다. 왕은 무릎 꿇고 애원하는 그 종을 불쌍히 여겨 놓아주고 빚을 삭쳐주었습니다. 그 종이 집으로 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백 데나리온은 백일분 노동자의 품삯인 셈입니다.

그런데 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은 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의 간청을 외면하고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후에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노하여 그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용서의 기본 개념은 ‘빚을 청구하지 않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때 과거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용서를 하면 주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용서는 기독교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용서하려면 첫째, 우리는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벧전 1:19)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둘째, 우리는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같이 하라”(엡 4:32)고 권면합니다. 용서는 ‘의지적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문제’입니다.

셋째, 용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도구로 인정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나를 살리고 또한 남을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용서받았으니 용서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갑성 목사(신길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