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신창호] 한반도 패러다임 시프트

입력 2015-09-18 00:30

냉전시대는 25년 전에 끝났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일으킨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시작돼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본격화된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은 독일 통일과 동구 사회주의 몰락으로 20세기의 유물이 됐다.

그런데 딱 한 곳, 한반도에서만큼은 여전히 냉전체제가 현실이다. 지난 70년간 남북을 둘러싼 지정학은 아무런 변화 없이 지속돼 왔다. 북한의 혈맹은 중국과 러시아(구 소련)였고, 남한의 맹방은 미국이었다. 세 강대국이 추구해온 ‘힘의 균형’ 정책 때문에 남북의 ‘자주통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천년 이상을 단일민족·단일국가로 버텨온 한반도를 둘로 나눠 놓고 미·중·러는 소련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 가운데 뭐가 더 우월한지를 시험했다. 서로 직접 충돌하는 구도를 면하기 위해 남북한을 완충지대로 삼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지정학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6·25전쟁에 김일성 편을 들며 참전해 ‘인해전술’을 선보였던 중국이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으로부터 이탈하려 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보다 ‘박근혜 한국’을 더 가까운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로 대접하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미국과 세계 2강(G2) 대결을 벌일 정도로 국력이 커졌는데 글로벌 시대에선 보기 드문 ‘불량국가’인 북한을 더 이상 끌어안고 갈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경제력과 위상이 높아질수록 중국은 북한을 더 외면할 개연성이 크다. ‘중국=북한 혈맹’이란 등식이 깨지면 한반도의 냉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수십년째 정체를 거듭해온 북한정권은 중국의 지원 없이는 버텨낼 힘을 상실할 게 틀림없다.

북한의 전유물이던 대미(對美) ‘벼랑 끝 전술’도 효용성을 다해가는 듯하다. 미국이 1994년 북·미 1차 핵 합의 이후 지속했던 ‘북한의 핵개발 포기=북한체제 보장 및 대북 수교’ 정책을 거의 폐기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체제를 보장해줄 만큼 ‘김정은 북한’이 상식적인 정권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북한이 수시로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니 추가 핵실험이니 하는 위협을 하고, 대남 도발에 나서는 것은 이런 초조함에서 비롯한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출범 이후 고집스레 ‘중국 밀착외교’를 밀어붙였다. 중국을 북한으로부터 떼어내기, 우리 편,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중립’ 위치까지라도 옮겨놓기가 그 핵심이다. 한쪽에서 “차라리 한·미동맹을 더 공고하게 하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미국마저 “한국보다 일본 먼저”를 외쳤지만 정부는 이를 버리지 않았다. 청와대가 ‘중국 견인’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리고 친중(親中) 정책은 서서히 위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변하기 시작한 한반도, 아니 동북아 전체의 지정학과 맞아떨어져서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친미국가’라는 70년간의 꼬리표를 떼고 ‘미·중 균형외교 국가’로 바뀔 것이다.

동서독 분단 시절의 서독 정부는 1960, 70년대 냉전의 한가운데에서도 ‘미·소 균형외교’를 추구했다. 우파가 집권하든, 좌파가 집권하든 이 정책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아무도 독일 민족이 ‘자주통일’을 이루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은 끝내 무너졌고, 통일 독일은 유럽의 중심이 됐다.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남북 대결의 패러다임이 우리 힘으로만 깨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씩 금이 가게 만들어 그 틀 스스로 침몰하게 만들 수는 있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