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폭력

입력 2015-09-18 00:20

얼마 전 병원으로 지인의 병문안을 갔다. 응급실 근처를 지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온 아기를 보게 되었다.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있던 아기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면서 울고 있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기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능력도 방법도 없다. 따라서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 병을 고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이 하는 모든 일들이 아무 이유 없이 가해지는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만 알기만 해도, 그래서 이 일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공포나 아픔은 좀 덜할지도 모른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며 나는 그래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어른인 나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언론에 보도되는 폭력에 관한 기사들을 떠올려본다. 사람이 사람을 모욕하고, 고문하고, 구타하고, 살해하는 일들이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PC방에 못 가게 해서, 행동이 굼떠서, 내 차를 주차할 자리를 빼앗아서, 혹은 오늘 내 기분이 나빠서 그랬단다. 그렇게 하찮은 이유로? 그렇게 살기가 힘들다는 건가? 믿어지지 않지만, 잠시 우울하다가 나는 그냥 잊는다.

사람은 ‘폭력 없는 순수’와 ‘폭력적 행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폭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뿐이라고 메를로퐁티라는 철학자가 말했다고 한다. 어른인 나는 세상을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견디고 버티는 방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소리 지르며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무기력, 무감각, 무관심. 그것이 내가 선택한 또 하나의 폭력일지도 모르고.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