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얌체 주차 때문에 막상 손님들은 차 댈 곳이 없어요.”
16일도 어김이 없었다. 오전 10시쯤 되자 순식간에 자동차 수십대가 나타나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앞 도로변에 일제히 주차하며 차로 1개를 완전히 점령했다. 길가 점포에서 아크릴판 가게를 운영하는 남모(63)씨는 주차된 차들을 보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물건을 싣고 오는 납품업체 트럭은커녕 손님들 차조차 잠시도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다.
남씨 가게 앞 도로는 서울시가 지난달 1일부터 한시적으로 도로변 주·정차를 허용한 302곳 중 하나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문에 가라앉은 지역경기를 살려보겠다는 취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인도 쪽 1개 차로에 주·정차를 할 수 있다. 주차시설이 없는 전통시장이나 상가 밀집지역에 ‘숨구멍’을 만들어 준 것이다.
서울시는 평일에 주·정차를 허용하던 38개 전통시장에 더해 86개 전통시장 주변 도로에도 이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주·정차를 허용하고 있다.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상가밀집지역과 6차로 미만 도로에 인접한 소규모 음식점 주변도 단속 완화 대상이다.
그런데 상인들은 울상이다. 추석을 앞두고 반짝 대목을 기대했는데 ‘얌체 주차’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손님과 무관한 차량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 남씨는 “주차 단속을 안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얌체 주차를 해놓는 것 같다”며 “막상 손님들은 주차를 못하는데 장사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얘긴지 모르겠다”고 했다.
‘얌체 주차’는 다른 전통시장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중구 중부시장에서는 인도에 접한 1개 차로는 얌체 주차 차량들로, 그 옆 차로는 시장 가게에 물건을 공급하는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2개 차로가 거대한 주차장이 돼 버린 셈이다.
추석을 준비하는 시민들은 주차 공간이 없어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 두고 짐을 날랐다. 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들 사이에선 짜증 섞인 고성이 오갔다. 시장을 찾은 박모(48·여)씨는 “명절에는 전통시장 근처에 주·정차를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미 다른 차들로 꽉 차 있다”며 “괜히 차를 갖고 전통시장을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길게 늘어선 주차 행렬은 인근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통시장 주변이라도 버스정류장 근처는 주·정차 금지구역이다. 시민들은 차로를 가로질러 버스에 타고 내렸다. 한 상인은 “도로에 내리는 버스 승객들이 사고가 날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시장을 찾는 손님들은 왜 주차단속을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주·정차 단속 완화가 실제 매출 증가로 이어지기는 하는 것일까. 서울시는 지난 7월 전통시장의 40%, 소규모 음식점의 27%에서 매출이 증가했다는 현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평가를 담당했던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설문조사 대상 상인들이 ‘매출이 늘었다’고 답한 비율일 뿐 매출액 증가 수치는 아니다. 사실상 ‘변화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전체 상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얌체 주차, 생계를 위협합니다”… 전통시장 주변 등 주정차 한시 허용했더니, 엉뚱한 차들이 점령
입력 2015-09-17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