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2000만원 껑충 아이 영어·태권도 학원 끊어”… 저소득층 치솟는 주거비에 교육비 양극화 심화

입력 2015-09-17 02:55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최모(43)씨는 두 달 전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다니는 학원 3곳 중 2곳을 끊었다. 매달 11만원이 들어가는 태권도학원과 10만원씩 내는 영어학원의 학원비가 부담스러웠다.

최씨가 아들의 학원 중단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전셋값이다. 신길동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는 그는 11월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집주인은 2년 전보다 2000만원이 오른 1억5000만원을 전셋값으로 불렀다. 1년 수입을 모조리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최씨는 “전셋값을 어떻게든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가계 부담이 너무 커질 것 같다”면서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학원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교육비 지출의 변화=날로 높아지는 전·월셋값이 한국인이 최고 가치로 생각했던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지고, 고소득층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게 만드는 교육 양극화 추세가 더욱 가팔라졌고, 그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급등세를 이어온 전·월셋값이 있다는 얘기다.

박종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16일 ‘보건·복지 이슈&포커스’에 실은 ‘학업자녀 있는 가구의 소비지출 구조와 교육비 부담’을 보면 저소득층 가구의 항목별 소비지출에서 최근 수년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소득 하위 0∼20%를 뜻하는 1분위 가구의 경우 전통적으로 식료품 지출 비중이 가장 높다. 이어 주거, 교육, 음식·숙박비 순이다. 2010년 이전에는 주거비 비중이 약간 더 높았는데 그 이후 교육비가 상대적으로 줄면서 격차가 더 벌어지는 추세다. 지난해 1분위 가구의 평균 주거비 비중은 17.1%, 교육비 비중은 11.7%였다.

소득 하위 20∼40%인 2분위 가구는 변화 양상이 뚜렷하다. 주거비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고 교육비 비중은 크게 줄고 있다. 전·월셋값 상승으로 인한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계층으로 보인다. 2011년 주거비·교육비 비중이 역전돼 지난해까지 계속됐다.

중산층 이상 계층을 뜻하는 4·5분위는 1998년 이후 주거비 비중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4분위의 경우 주거비 비중이 증가 추세이긴 하지만 9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하 8.6%에서 최고 10.7%다. 5분위도 7.6%에서 9.6% 사이를 오가고 있다.

◇교육비 양극화 점점 뚜렷=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소득 최상위 계층인 5분위 가구는 지난해 평균 61만6965원을 교육비로 지출했다. 1분위 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평균 23만6025원으로 최상위 계층 가구의 38.3% 수준이다. 박 연구위원은 “5분위 가구만 예외적으로 교육비 지출액이 최고 정점에 이른 시기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위 계층 가구는 자녀가 3명 이상이면 그만큼 교육비 지출을 늘린다. 하지만 소득 하위 계층은 세 자녀 가구가 두 자녀 가구의 교육비 지출 비중을 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정된 수준에서 교육비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저소득층에서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박 연구위원은 “자녀에 대한 가족의 지원은 절대적인 것으로 규범화됐지만 주거비 지출 증가에 따라 부모가 자녀 부양에 느끼는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면서 “공교육비와 사교육비의 부담을 완화하고 저소득 계층과 다자녀 가구에 대한 주거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기석 신훈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