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주요 시정요구에 대한 ‘면피 처리 사례’ 보니… “109개 위원회 정비” 지적에 정부, 달랑 21개만

입력 2015-09-17 02:19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피감기관 기관장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고함만 지르다 끝나는 이른바 ‘호통국감’에 대한 비판은 매년 반복된다. 하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보여주기식’ 국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건’ 올리겠다는 의원들과 이 때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식의 정부의 안일함이 맞물려 이벤트성 국감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의원들은 행정부의 실정을 비판하지만 사후 점검을 하지 않고, 이 같은 행태를 잘 아는 관료들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적당히 시정 조치하는 시늉만 한다. 지난해 국감에서 의원들이 시정을 요구한 주요 안건 11건에 대한 처리 결과를 분석해 16일 내놓은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는 보여주기식 국감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국감에서 한 의원은 “안전행정부 산하 48개 위원회 중 16개 위원회는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고 있으며, 50%에 해당하는 23개 위원회는 회의록 작성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은 “최근 3년간 회의 개최가 한 번도 없는 위원회가 8개이며, 수당만 2013년부터 2014년 초까지 12억∼13억원 소요됐다”며 “이름뿐인 위원회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사실 정부 위원회 난립 문제는 매년 국감 때마다 지적되는 단골 메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과 대통령령에 근거를 둔 우리나라의 정부 위원회는 2007년 416개에서 지난 6월 말 현재 549개로 매년 늘어 왔다. 뒤늦게 정부가 연간 회의 실적 2회 미만 위원회를 정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지만 정비 계획 대상 109개 위원회 중 정비 조치가 완료된 위원회는 21개(19.27%)에 그치고 있다. 이와 관련, 입법조사처는 “연간 2회라는 단순 회의 개최 실적만으로 활동 부진 위원회를 규정하고 있으나 회의 개최 실적 외의 실질적인 위원회 운영의 효율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양병원 인력·시설 기준, 안전점검 및 서비스의 질 관리, 진료비 부당 청구 문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지난해 국감에서 잇따랐다.

이에 정부는 시설 및 인력 기준을 강화하고, 진료비 부당 청구 기관에 대한 현지 실사와 특별 점검을 수행했다. 하지만 부당 청구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수가체계 개편 연구는 현재 중단된 상태이며, 그나마 시설 기준 강화는 국정감사 지적과는 별개로 이미 진행된 사안이었다. 또 의사 등 인력 확보 기준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의료 인력을 부풀려 신고하는 경우가 있어 인력이 제대로 충원됐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우선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선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고 후 추진돼온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과 주민번호 수집 금지 과정 혼란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 요구가 있었다. 이에 방통위는 주민번호 대체수단 적용에 관한 대책반을 운영하고,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를 위해 주민번호 사용 제한 정책 안내서를 개정해 발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새로운 제도 집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혼선 최소화에 시정 요구가 맞춰져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방통위의 처리 결과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대체수단의 활용과 홍보 방안에만 주력했다”고 평가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시정 요구가 있었던 제주 국제학교 학생 이탈에 대한 정부의 충원대책 역시 미봉책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국비 지원을 받고 있는 제주 국제학교 학생 이탈에 대한 대책으로 저학년과 고학년의 정원을 조정해 전체적인 합격률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학생 충원율을 높이기로 본교 측과 합의했다. 그 결과 학생 충원율은 올해 전년 대비 11.9% 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이 방식의 대책은 일시적 처방에 불과하고, 국제학교 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경쟁국과의 국제교육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