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를 지켜주는 소방관들이 죽음으로 내몰린다니

입력 2015-09-17 00:59
지난 5년간 순직 소방관보다 우울증, 신변 비관 등을 이유로 자살한 소방관이 더 많았다는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다. 어느 직종보다 더 위험에 직접 노출되는 소방공무원들이 사고로 숨지는 경우보다 자살하는 숫자가 더 많다니 이들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강도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5일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직한 소방관은 33명이었고 자살한 소방관은 3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살 35건 중 과반인 19건(54%)이 우울증 등 신변 비관으로 인한 것이었다.

국가의 첫째 역할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그 일선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소방공무원들이 다른 공무원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지는 못할지언정 푸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 자료들을 보면 그들의 곤경을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빈약한 예산으로 인한 인력 부족과 장비 노후화의 심각성은 이미 악명이 높다. 일부 소방관들은 낡아서 제 기능을 못하는 방화장갑 등을 사비를 들여 구입해 현장에 출동한다. 또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전체 소방공무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2만1509명이 1933억원의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 이 가운데 7326명이 104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방 조직은 3만9000여명의 지방소방관과 중앙소방본부 소속 300여명의 국가소방공무원으로 이원화돼 있다. 일선의 위험하고 궂은 업무는 모두 지방소방관들의 몫이다. 그래서 시·도의 재정 형편에 따라 소방관 충원율과 근로조건, 장비 확충 등에서 편차가 심하다. 소방공무원의 국가공무원화 필요성이 거듭 제기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부실한 소방공무원 정신건강 관리를 선진화하는 것이다. 소방공무원의 높은 자살률은 불규칙적인 근무환경과 더불어 외상후 스트레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 소방방재청(현 중앙소방본부)이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에 의뢰해 2014년 4월 소방공무원 3만7093명을 대상으로 심리 평가를 실시한 결과 1년간 참혹한 현장에 노출된 경험이 평균 7.8회로 나타났다. 소방공무원의 심리질환 유병률은 증상에 따라 일반인의 최고 10배에 이르지만 1년 내에 치료 경험이 있는 소방공무원은 6.1%에 불과했다. 이들의 심리적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전문병원을 당장 설립해야 한다.

소방공무원들을 자살로 내모는 근본적 원인은 이들이 택한 직업에 대한 회의와 자괴감일지 모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방공무원에 대한 홀대는 그들의 사기는 물론 국민의 안전도 위협한다. 정부의 예산책정 우선순위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