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손] 아이 눈높이에 맞춘 할머니의 소통과 배려

입력 2015-09-18 02:13
지하철 안이다. 또각또각 아이 손을 잡고 한껏 세련된 치장의 젊은 엄마가 들어온다. 옆 자리에 앉은 네 댓살 아이가 혼자 외출 나온 할머니는 여간 사랑스럽지 않다. 아이 눈이 머무는 곳은 핸드백 위 다소곳이 놓여진 쭈글쭈글 할머니 손이다. “할머니 손엔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 “넌 내가 할머니인 걸 어떻게 알았어?” “이렇게 주름이 많으니까.” “그래 맞았어. 오래 살면 남들이 할머니라는 걸 알아보라고 주름이 생기는 거야.”

둘의 대화는 정답다. 세상 모든 게 신기한 아이가 던지는 질문은 엉뚱하기만 한데, 할머니의 대답에는 정과 지혜가 있다. 아이의 관심은 드디어 할머니 손에 낀 하늘색 알이 박힌 반지에 미친다.

“이 반지 나주면 안돼?” 그 당돌한 물음에 할머니 몸 온 가득 행복이 퍼진다. 할머니의 손녀도 어릴 적 그 반지를 좋아했다. 얼마짜리 ‘뽑기’에서 뽑았냐고 천진스럽게 물었었다. 아이에게 만져보게 하려고 반지를 빼려는 순간, 상황이 반전된다. 젊은 엄마가 아이 팔을 낚아채며 일어섰던 것이다. 내릴 정거장도 아닌데. 지하철 계단 앞에 할머니가 아주 작아진 모습으로 서 있는 마지막 장면이 슬프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대답해주는 친절하고 다정한 할머니, 당돌하면서도 천진스런 아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쌀쌀 맞은 아이 엄마…. 어쩌면 오늘 지하철 안에서 목격할 것 같은 우리시대의 흔한 풍경을 소재로 소통과 배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다 속이 뜨끔할 엄마가 많을 거 같다.

중산층의 허위와 이기심을 소재로 죽비소리 같은 가르침을 주는 소설을 다수 발표한 박완서 선생의 동명 동화를 소재로 했다. 작가의 생각을 아이 눈높이에 맞게 잘 표현한 그림이 눈길을 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