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끌어온 노사정 대타협이 일단 완결되었다. 저성과자 일반해고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위한 취업규칙 문제로 마지막 몇 달 동안 진통을 겪다보니 대타협이 이들 두 개의 난제를 풀기 위한 소타협이 된 격으로 보이는 게 아쉽지만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란 큰 목표가 담긴 대타협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우선 한국 경제사회의 위기에 대해 공감을 이뤘다. 고령화, 저성장, 청년실업, 양극화의 위협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합의문 곳곳에 녹아 있다. 고통분담 없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청년고용 활성화, 원하청 간 상생고용, 실업급여 확대, 근로시간 단축, 임금제도 개선 등이 주요 합의사항으로 담겼다. 하나하나가 제대로 실천하려면 만만하지 않은 사항들이고 그래서 노사정이 제대로 실천한다면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효과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대타협에 서명한 노사정 대표들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요건과 절차를 협의하고 이후 법제화를 추진한다는 점을 두고 노동계는 찬반으로 갈라져서 내홍을 겪고 있고, 경영계도 이 정도로는 그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일부는 표정관리일 수도 있고 일부는 조심스레 관망하는 행보일 수도 있다. 17년 만의 대타협이라는 큰일을 하고도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대타협의 성격과 목표를 전달하는 데 역량 부족이다.
대타협의 분위기를 제대로 조성하지 못한다면 이후 예견되는 험난한 입법 및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입장을 바꾸거나 변명을 하거나 주저하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합의문에 서명한 노사정 대표들은 공동운명체로서 합의의 의미를 살리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타협이 지향하는 원칙에 대해 노사정이 최소한의 공감대를 다시 확인하고 이를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노사정이 최소한 서로 동의하고 그리고 국민의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은 사측이 원하는 유연화나 노측이 강조하는 사회적 보호 그리고 정부가 치중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어느 하나만 강조해서 풀 수 없는 복잡한 사안들이 노동시장에 너무 많다. 고령화 대비와 청년실업 해소, 경영권과 노동기본권,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임금과 저임금 계층, 임금인상과 일자리 확대 등 이 시대 모순과 갈등의 노동시장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려는 근본적인 성찰과 각오가 있어야 한다. 공정한 노동시장 질서가 그것이 될 것이다. 모든 합의 메뉴에는 이런 정신이 관통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이라는 원칙에서 보면 이번 합의는 중간 중간 비어 있거나 시급한데도 중장기 과제로 돌린 것이 많다. 직무와 숙련 중심의 임금체계 구축을 통한 임금격차 축소, 장시간 근로 개선을 통한 추가적 일자리 창출, ‘사오정’ 이후 60세 정년까지 고령 인력의 임금조정 대가로서 실질적인 고용안정 방안 등 몇 가지 핵심적인 공정성 제고 방안들이 제대로 또는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유연성과 안정성 간 거래 방식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서로가 원하는 메뉴들 간의 단순한 덧셈과 뺄셈으로는 해법이 도출될 수 없다. 이 시대의 불확실한 환경에서 노동시장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정성의 수칙이 확립돼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갖 약을 먹기보다 단순한 생활습관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대타협의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기보다는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사풍향계-이장원] 노사정 대타협 이후 동력 살려가려면
입력 2015-09-17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