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사도’와 오스카상

입력 2015-09-17 00:20

한국영화는 지금까지 한 번도 후보에조차 오른 적이 없었다. 해마다 2월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에서 개최되는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상)의 외국어영화 부문 얘기다. 1929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이자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스타들의 축제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 부문에는 나라마다 한 편만을 출품할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출품작을 선정한다. 세계 각국의 출품작은 아카데미영화상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다섯 작품을 최종 후보로 뽑는다. 한국영화는 1963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첫 도전에 나선 이후 최종 후보에 아직 한 차례도 포함되지 못했다.

신 감독은 ‘벙어리 삼룡이’(1965)에 이어 ‘마유미’(1991)로 재도전했지만 최종 후보에 오르는 데는 연이어 실패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1),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3)와 ‘밀양’(2008),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4)과 ‘피에타’(2013) 등 해외 영화제 수상 감독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에는 심성보 감독의 ‘해무’, 2012년에는 장훈 감독의 ‘고지전’, 2011년에는 김태균 감독의 ‘맨발의 꿈’, 2010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도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5)도 후보작이 되지 못했다. 작품 소재가 지나치게 한국적이어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내년 제88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은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선정됐다. 이 감독은 2007년 ‘왕의 남자’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영화는 아버지 영조(송강호)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유아인)의 비극적인 사건을 가족사로 재조명했다. ‘사도’가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된 이유는 조선왕조를 바탕으로 했지만, 외국인도 충분히 공감할 보편적인 내용으로 수준 높게 연출한 것이 주효했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올해 영화감독 임권택 봉준호, 배우 최민식 송강호, 애니메이션 캐릭터 전문가 김상진 등 한국인 5명을 신입 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 입상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6000명의 아카데미 회원으로 한국인이 위촉된 것은 처음이다.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신입 회원 송강호가 ‘사도’에 투표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아카데미 회원의 연령이 높은 편이고 대부분 백인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의 로비 공세에 노출돼 있다는 점 등 문제가 없지는 않다.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을 두고도 뒷말이 많은 적도 있지만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역대 수상작은 영화를 통해 자국의 사회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1년 수상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이란의 가족관계를 잘 드러냈고,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2001)은 검술을 통해 동양정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탈리아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는 나치의 만행을 유머러스하게 담아 갈채를 받았다.

이제 ‘사도’ 차례다.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오스카를 품에 안아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얻는다면 좋겠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