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해 서울대병원을 나선 길이었다. 서울대병원이 위치한 혜화역에 내리자 대찬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지하철역부터 병원까지는 꽤 걸어야하는 거리였기에 대찬 비를 뚫고 걸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개찰구 앞에서 대책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러자 지하철역을 나서던 한 어르신께서 자신의 우산 밑으로 들어오라 손짓을 하셨다. 거절하지 않고 어르신 옆에 바짝 붙었다.
감사함에 이것저것을 묻게 됐다. 의사도 아닌데, 어디가 어떻게 아파 오셨냐고 물었다. 어르신은 그날 아침 울산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기차가 아닌 버스를 택했고, 그 덕에 그날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울산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서야 이곳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그렇게 부산을 떨었지만 결국 늦었다며 진료를 못 볼까 초조해하셨다.
희귀 골육종을 앓고 있는 소년의 어머니는 자신을 가리켜 ‘운이 좋은 경우’라고 소개했다. 희귀암을 진단받고 해당 지역 병원에서는 서울 소재 병원을 가볼 것을 권했다. 지방과 서울 소재 병원을 오가며 힘겹게 치료를 이어가던 이들은 어느 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서울에 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부모는 그곳을 가리켜 “여러 환아들이 함께 생활하는 소위 환아 합숙 시설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 중에도 자신들처럼 뽑히지 않아 먼 집과 병원을 힘겹게 오고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두 사례에는 비정상적인 의료계 구조가 여러 갈래 엉켜있다. 어르신은 매번 왕복 8시간을 길에 허비하며 서울대병원을 향한다. 그러나 의료진을 마주하고 앉아 자신의 아픈 곳을 얘기하는 시간은 10분 채 안 된다. 3분 진료가 개선되지 않는 의료 환경과 의료 질 불균형을 초래하는 선진국형 대형병원의 서울 쏠림현상은 현 의료계에서 벌어지는 대표적인 비정상적인 구조다. 희귀암 아이를 둔 부모 역시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대책이 없었다. 누군가는 무조건 서울을 향하는 환자와 가족을 비난한다. 그러나 ‘무지스럽다’며 환자를 비난하기보다 근본적으로 왜 환자들이 앞 다투어 서울로 향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자식이 아프고, 부모가 아픈데 서울에 더 크고 좋은 병원이 있다는 주변의 말은 무시하기 어렵다.
4대 중증질환보장, 희귀질환보장 등 거창한 이름의 의료지원책이 존재한다. 하지만 의료계 산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다양한 이름의 질환 보장정책은 의료계의 비상식적 구조의 연장과 암치료에 따른 가족의 붕괴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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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그들이 굳이 서울 찾는 이유 곰곰 생각해봐야
입력 2015-09-21 02:30 수정 2015-09-21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