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으로 노인을 규정하는 나이는 65세다. 지금처럼 계속해 평균수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숫자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현재 나이에 0.9를 또 어떤 이는 0.8을 곱한 숫자가 생물학적 나이에 걸맞은 시대라고 말한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의 비율이 7%에 달하면 고령화사회, 14%에 이르면 고령사회 그리고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라 정의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으며 2018년에는 고령사회에,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의 일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이 빠른 고령화 속도다. 머지않아 노인이 주류가 되는 노인천국이 된다는 말이다.
노년기에 가장 두려운 질환 두 가지를 든다면 바로 치매와 뇌졸중일 것이다. 두 질환 모두 건강하게 유지되던 뇌에 후천적으로(어쩌면 우리가 잘 못 관리한 결과로) 손상되어 생기는 병이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돼 수 분 또는 수 시간에 걸쳐 반신 마비, 언어장애, 보행 이상과 같은 신경기능 결손이 매우 빠르게 나타나는 급성 질환이며 치매는 신경세포가 오랜 세월에 거쳐 손상이 반복된 결과로 증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만성 퇴행성 뇌질환이다. 즉,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질환이 아니고 증상이 눈에 띄기 적어도 15년 내지 20년전부터 뇌 조직에 병리적 변화가 시작되는 잠복기가 매우 긴 퇴행성 신경질환인 셈이다. 신경세포가 각종 스트레스에 의해 손상을 입을 때마다 생겨나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뇌에서 완벽하게 제거되지 못하고 일부 잔해가 남게 되면 오랜 기간에 걸쳐 뇌 조직에 쌓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단백질 찌꺼기는 독성물질로 변하게 되는데 이를 베타-아밀로이드라고 부른다. 이렇게 베타-아밀로이드가 많이 쌓여 생기는 치매가 바로 알츠하이머병인데 노인성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베타 아밀로이는 독성이 매우 강해 신경 세포를 죽게 하며 살아 있는 정상적인 세포마저도 그 기능을 방해한다. 기억과 학습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들 가운데 60∼70%가 죽어 없어지거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까지 인지 기능은 큰 문제없이 작동 되는데 이 시기를 지나면 서서히 치매 증상이 나타나 임상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진단이 내려진다. 어떻게 보면 이미 치료 시기가 늦었을 때에 이르러야 진단이 가능해지니 애석한 일이다.
치매 위험 인자들이 있다. 중년기의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부정맥, 비만 같은 혈관위험 인자와 과도한 음주, 흡연 그리고 스트레스와 우울증 같은 것들인데 모든 위험 인자들은 신경세포의 활성을 한층 더 떨어뜨리는 동시에 독성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더 많이 만들게 한다. 따라서 젊어서부터 이 위험 요소들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노년에 이르러 건강한 동년배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이 빨리 찾아오며 치매의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날 것임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건강보험 적용 인구의 12.2%에 불과하지만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이상(36.3%)이다. 더구나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치매 유병률은 2014년 9.58%(61만명)에서 2050년 15.06%(217만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따라서 급증하는 치매의 발생을 억제하여 노년기 삶의 질을 개선하고 국민경제의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고 중차대한 실정이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A sound mind in a sound body)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스포츠계의 명언이다. 이 말은 로마시대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사회 풍조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가며 혼탁해지는 사회정신을 개탄하여 한 말이다. 오늘날에도 이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되살아난다. 앞으로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우리 모두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건전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유지해 ‘성공적인 노화 (successful ageing)’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노력과 수고 없이 거저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하물며 청장년기 이후 수십 년을 질병의 고통 없이 건강을 누릴 수 있는 ‘성공적 노화의 길’은 멀고도 험한 여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는 법이다. 한설희<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
[한설희 칼럼] 치매 없이 9988 … 성공적 노화에 이르는 길
입력 2015-09-21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