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멸종위기 동식물 불법 반입, 신고만 하면 봐준다?… 엉성한 자진신고제, 밀수 부추긴다

입력 2015-09-16 03:15

지난해 11월 28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난데없이 원숭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휴대품 검사를 받던 A씨의 가방에서 새어나온 소리였다. 세관원들이 다가가 가방을 열자 몸길이 약 20㎝의 원숭이 4마리가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태국에서 입국하던 A씨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검은술마모셋 원숭이 1마리와 비단마모셋 원숭이 3마리를 몰래 가방에 담아 국내로 들어오려 했다. 그의 다른 짐에서는 앵무새 6마리와 알 50여개도 발견됐다.

야생 동식물은 함부로 수입할 수 없다. 특히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은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포획·채취 및 상거래가 엄격히 규제된다. 하지만 밀수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에서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정부는 단속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밀수가 공공연하게 벌어지자 올해부터 특별 자진신고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 제도가 되레 밀수를 부추기고 있다. 자진신고를 하면 모든 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이 기간에 맞춰 밀수하는 업자들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앵무새 99% 밀수 추정=밀수업자들은 주로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멸종위기 생물을 사들여 국내로 들여온다. 반입된 동식물은 관상용, 전시용 등으로 빠르게 팔려나간다. 체험 동물농장이나 키즈카페 등에서 전시 중인 동물도 상당수 이렇게 밀반입된 것이다. 파충류·조류는 X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알 상태로 들여온다고 한다. 국내에 전시·유통되는 앵무새의 99%는 밀수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CITES 보호종’을 밀수하다 적발되면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3000만원 벌금을 부과한다. 환경부는 지난 1월 일본원숭이 15마리를 전시한 경기도 파주의 캠핑장에서 원숭이를 몰수하고 벌금을 부과했다. 지난 3월에는 앵무새 26마리를 허가받지 않고 전시한 경기도 김포 앵무새체험장을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밀수에서 불법거래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하고 처벌하는 시스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15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CITES 동물 밀수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 7월까지 관세청이 적발한 밀수는 6건(114마리)에 불과하다. 이 기간 동안 환경부가 적발한 CITES 보호종 불법거래는 42건이다. 적발건수보다 훨씬 많은 규모로 밀수와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의 단속인력은 고작 7명이다. 7개 지방환경청에 멸종위기생물 불법거래를 단속하는 담당자를 1명씩 두고 있을 뿐이다.

◇“자진신고 면책 노린 밀수꾼 대거 출국”=국내로 밀반입된 야생생물의 불법거래가 급격하게 늘자 환경부는 지난 8월부터 10월 말까지 자진신고를 받고 있다. 불법으로 보유하고 있는 야생생물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하고 양성화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자진신고 제도가 허점을 드러내면서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스스로 신고만 하면 처벌을 모두 면제해주는 데다 계속 밀수한 동물 등을 보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당국은 밀반입한 야생동물을 보유자가 스스로 처분하거나 보호시설에 넘길 때까지 유예기간을 준다. 다만 유예기간에 제한이 없어 사실상 무기한으로 보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난 8월에만 413건의 자진신고가 접수됐다. 밀수업계 관계자는 “이번 자진신고 기간에 맞춰 동남아로 출국한 업자들이 많다”고 했다. 급기야 환경부는 관세청에 공문을 보내 “자진신고 기간에는 불법반입 개체를 양성화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해 밀수 등의 불법행위 증가가 우려된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몰수한 동물을 적절하게 처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환경부가 장 의원에게 제출한 ‘자진신고한 CITES 동물에 대한 처리’ 자료를 보면 몰수 동물 보호협조기관 223곳 가운데 동물실험실 3곳이 포함돼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동물실험으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