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15일 바람을 피우는 등 부부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기존 ‘유책주의’ 판례를 재확인했다. 회복될 수 없는 부부관계라면 책임 유무와 상관없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파탄주의’는 한국사회에서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예외 범위를 28년 만에 일부 확대했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배려 등으로 상쇄되거나 오랜 세월이 흘러 책임을 묻는 게 무의미할 정도가 됐다면 유책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유책 배우자 A씨가 아내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976년 결혼한 A씨는 잦은 외박과 음주로 아내와 갈등을 빚다 98년 다른 여성을 만나 혼외자를 낳았다. 2000년 집을 나와 별거를 시작한 A씨는 2011년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대법관 13명 중 7명은 “스스로 혼인 파탄을 야기해 놓고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또 사회·경제적 지위가 열악한 여성 배우자의 ‘축출이혼’ 피해를 막아줄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유책주의’는 여전히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축출이혼 등을 막는 법적 장치를 일찌감치 마련한 파탄주의 도입 국가와 단순히 비교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대법관 6명은 “회복이 불가능한 혼인관계는 사실상 이혼 상태와 같다”며 “법원이 이혼을 인정해 주는 게 합리적”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A씨의 책임은 이혼에 따른 배상이나 재산분할 등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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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배우자 이혼訴 불가” 대법원 ‘유책주의’ 재확인
입력 2015-09-16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