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서 ‘희망의 씨앗’ 틔운다

입력 2015-09-16 02:56
‘마음으로 이어지는 11년의 기억’ 전시회에 걸릴 필리핀 톤도 지역 사진들. 전시회는 19∼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캐슬플라자에서 열린다. 드림 V 제공
사진전을 준비하는 드림 V 회원들. 드림 V 제공
장연실(34)씨는 5년간 일하던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자리를 내려놓고 2011년 필리핀 마닐라 외곽의 쓰레기 매립지 톤도 지역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과장 승진을 코앞에 두고 ‘지금이 아니면 아예 못 떠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품어왔던 봉사의 꿈을 따라 가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장씨는 15일 “삶에 감사하는 방법을 배웠다”며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되묻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웃었다.

6개월간의 활동을 마친 장씨는 이후 지난 4년간 10번 더 톤도를 방문했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등 틈이 나면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1주일씩 그곳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지난해 사회공헌 사업을 하기 위해 소셜벤처회사를 창업해 일하고 있다.

여의도의 2배 크기에 40만7000여명이 살고 있는 톤도는 마닐라 인근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자 빈곤층, 마약 거래원과 범죄자들이 모여 무허가 판자촌을 이룬 세계 3대 빈민촌이다. 매립지는 하루 종일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고 쥐가 들끓는다. 전기와 수도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35도까지 오르는 더운 날씨에는 두통에 시달리고 우기에는 쓰레기물이 차올라 걷기가 어려울 정도다. 주민들은 오늘도 쓰레기를 뒤적여 삶을 살아낸다.

장씨처럼 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 ‘드림V’가 오는 19∼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캐슬플라자에서 필리핀 톤도 사진전 ‘마음으로 이어지는 11년의 기억’을 연다. 장씨와 함께 국제개발 연구원으로 일하는 류인선(32)씨, 스포츠마케팅 마케터 이지연(31)씨, 가구 디자이너 김해나(26)씨 등 총 15명이 함께한다.

이들은 지난 2004년부터 최근까지 최소 6개월씩 톤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숙박할 장소와 점심식사만을 제공받은 자비량 활동이었다. 현지 NGO단체 SRD 콘코쿄센터에서 일하면서 유아교육 프로그램, 문화행사 등을 기획하고 도왔다. 직접 배식을 나가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있었다.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심혜리(32)씨는 2004년 대학생 때 톤도를 찾았다가 여전히 그때의 강렬했던 기억을 잊지 못해 톤도를 그리워하고 있다. 심씨는 “‘왜 가난하게 살아가는가’란 막연한 궁금증을 가지고 떠났던 톤도에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발견하고 마음이 아팠다”면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돕고 싶다”고 전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생 유선우(22)씨는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아 본 사람들”이라며 “빈민촌이라 하면 배고픔이나 불행, 고난 등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르겠지만 직접 살아 본 그 지역 주민들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행복했다. 그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고 사진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두 달 전부터 일주일에 1∼2번씩 각자 업무를 마친 오후 7시30분에 모여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사진전을 준비했다. 직접 찍은 40여점이 전시된다. 11년간 바뀌어 온 톤도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전에선 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제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고 기부 받아 지역 주민들의 먹을거리를 제공하기로 했다.

“‘최악의 빈민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어요.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삶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어요. 사진 속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장연실씨)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