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원은 이혼소송에서 ‘유책주의’ 원칙을 견지해 왔다. 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게 한 과거 일본 민법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혼인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대법원은 특수한 경우에 혼인 파탄 책임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파탄주의’를 조금씩 수용했다.
우리나라는 1912년 일제 강점기부터 1960년 현행 민법 시행 전까지 일본 민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당시 일본 민법은 ‘배우자가 간통하거나 범죄로 처벌받았을 때’ 등 일부 경우에만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했다. 유책 배우자는 기본적으로 이혼청구권이 없었다.
이런 원칙은 현행 민법에 그대로 유지됐다.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할 경우 잘못이 없는 상대 배우자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는 1959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가 모델이 됐다. 유책주의는 순기능을 가져오기도 했다.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 남편에게 쫓겨나는 상황(축출이혼)을 방지했고, 이혼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가정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혼인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남편의 바람 등에 혼인은 이미 파탄이 났는데 아내가 이혼에 반대한다고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게 실익이 있느냐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다. 여성 지위가 향상돼 ‘축출(逐出)이혼’ 우려가 줄어든 점도 한몫했다.
대법원은 유책주의 원칙하에서 예외적으로 파탄주의 적용 범위를 점차 늘려왔다. 이혼청구 사유의 예외조항인 민법 840조 6항이 통로였다. 6항은 ‘혼인관계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기타 사유가 있을 때’ 이혼청구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바람기 때문에 20년 이상 아내와 별거한 남편’이 청구한 이혼소송에도 적용됐다. 대법원은 “혼인 파탄의 1차적 원인이 남편에게 있다”면서도 “무책(無責) 배우자인 아내에게 혼인관계를 회복할 의사가 없다”며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려 했던 점 등으로 볼 때 아내가 ‘단순한 보복 감정’에서 이혼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 2월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결정에도 반영됐다. 간통죄로 처벌하는 것은 이미 파탄 난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부부관계가 회복 가능한지 따지는 이혼소송 파탄주의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현재 유책주의를 유지하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영국(1969년) 프랑스(1975년) 독일(1976년) 등은 수십년 전에 파탄주의를 채택했다. 우리 민법의 모델이 된 일본도 1985년 파탄주의로 전환했다.
정현수 양민철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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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16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