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한 무대에 서는 박정자·손숙 “우리는 전우같은 사이에요”

입력 2015-09-16 02:57
연극 ‘키 큰 세 여자’에 출연하는 박정자가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숙의 등을 쓰다듬으며 웃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우리는 전우 같은 사이예요. 연극계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견뎌왔잖아요.”

수십년간 한국 연극계의 간판 여배우로 군림해 온 박정자(73)와 손숙(71)이 2008년 연극 ‘침향’ 이후 7년 만에 한 무대에 선다. 국립극단이 다음 달 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키 큰 세 여자’에서다. 15일 서울 대학로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과 우정을 감추지 않았다.

각별한 사이인 둘 사람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건 의외로 많지 않다. 50대에 막 접어든 1990년 ‘베르나다 알바의 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개 작품에서 6번 한 무대에 섰다. ‘신의 아그네스’는 92년과 2007년 두 번 함께했다.

박정자는 “무대에서의 전쟁을 치르려면 옆에 있는 전우가 중요하다. 손숙이 내게 그런 존재”라며 “8년 전 ‘신의 아그네스’를 할 때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손숙의 격려가 큰 힘을 줬다”고 말했다. 무대 밖에서 박정자를 ‘형님’이라고 부른다는 손숙은 “나 역시 지쳐서 연극을 그만두려고 했을 때 형님 덕분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내 투정을 받아준 형님에게 고맙다”면서 “이렇게 투정하면서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했다.

두 여배우가 연기력을 겨룰 ‘키 큰 세 여자’는 미국의 대표적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91년 발표한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을 통해 ‘인생은 죽음이 있기에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박정자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90대 할머니 A를 맡았고, 손숙은 A를 돌보는 50대 간병인 B를 연기한다. 국립극단 시즌단원 김수연이 20대 법률 대리회사 직원 C를 맡았다. 세 사람은 각각 다른 인물이면서 A의 분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극단 여인극장이 96년 처음 소개한 바 있다.

박정자는 “50년 이상 연극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했지만 배우로서 이렇게 어려운 작품은 처음이다. 배우가 연극의 꽃이라고 하지만 실은 발가벗겨진 채 무대 위에 내동댕이쳐지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다”면서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담은 이 작품을 하면서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70대 배우들이 20살 위아래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손숙은 “여배우에게 굳이 70대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순간 내 나이를 잊어버렸다”면서 “게다가 배우라면 실제 나이보다 20∼30살 위아래는 거뜬히 연기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사가 너무나 공감이 간다. 지난 세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