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는 문외한이지만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은 안다.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영국 패션계의 여왕’ ‘패션 디자이너의 대모’라는 그의 특집을 봐서다. 그 방영물을 끝까지 본 것은 잘 이해도 못하는 패션계의 얘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러 정치·사회 현안에 관한 주장들 때문이었다. ‘영국은 이교도가 돼야 한다’는 그의 도발적인 주장이 작품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수적인 영국 현대 문화에 대한 불만과 통렬한 비판을 담은 것만은 틀림없다. 70대 중반 나이에 어지간히도 반(反)보수·기득권·기존 질서를 부르짖는 데 힘을 쏟는다. 그래서 언행이 일치하는 문화계의 권력이라고 평가되는 모양이다.
그가 지난 11일 탱크를 몰고 옥스퍼드셔주 위트니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자택 앞으로 돌진했다.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 셰일가스 개발을 정부가 27곳에 허가해준 데 대한 항의 시위다. 영국에서는 무기만 장착하지 않으면 개인이 탱크도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BBC방송 등의 뉴스 동영상을 보면 그는 일반 도로로 흰색 탱크를 몰고 가 수십명의 지지자와 함께 시위를 벌이고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 경찰은 무덤덤하게 지켜볼 뿐이다.
우리에게 탱크는 계엄령, 위수령, 5·16, 10·26, 5·18 같은 섬뜩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탱크로 행진을 하고, 총리 집 앞에서 당당히 주장을 한다. 막는 경찰도 없고, 충돌도 없었던 ‘탱크 시위’는 그저 ‘유쾌한 반란’ 정도로 느껴진다. 생각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 없는 자유스러움이나,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유 있는 사회가 살짝 부럽다.
대통령을 이상하게 묘사했다고 처벌받고, 시위는 했다 하면 증오가 넘쳐흐르고, 물리적 충돌은 늘 정해진 순서이고, 생각이 다르면 제압 대상으로 간주되는 사회는 미(未)성숙 그 자체다. ‘하얗지 않다고 해서 검은 것은 아니다.’ 흑백 논리의 한계만 인정해도 이 사회 갈등의 반은 줄어들겠건만….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탱크 시위
입력 2015-09-16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