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를 ‘양날의 칼’이라고 한다. 쓰기에 따라 유용하고 착한 부채가 될 수도 있고 위험을 수반하는 나쁜 부채가 될 수도 있다. 가계부채가 1130조원을 넘어서면서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워지는 물속의 개구리가 물이 뜨거워졌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다 부채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금융위기 가능성을 높인다. 금융위기는 내·외부 요인으로 결정되는데 현시점에서 외부요인으로는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및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있다. 내부요인으로는 저성장, 부진한 개혁, 인구 고령화 등이 있다. 그런데 최근 외부요인과 관련된 위험이 확대되면서 빠르게 증가하는 부채규모가 한국경제의 취약성을 높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기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를 상회하는 상태가 계속될 경우 금융위기 발생은 시간문제다.
둘째, 현실적으로는 내수 위축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소득과 재산에 여유가 없는 저소득 빈곤층의 경우 소득이 줄거나 집값이 오르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문제가 악화될 경우에는 부채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이 다시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 현재 기업부채로 추계하는 자영업자 부채 또한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사업 수익에서 비용을 제외하고 이자를 갚고 나면 생활비는 다시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총수요 및 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면서 내수 위축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가계부채 확대를 유인 내지 용인하면서 계속해서 부동산 시장의 반짝경기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가계부채 총량의 증가 속도를 억제하여 내수 활성화를 유도하고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낮출 것인가. 후자의 경우 일부 부동산 시장의 반짝경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반론이 있겠으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및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등을 돌아볼 때 그간의 가계부채 증가율 유지는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7월 22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제시한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은 고정금리·분할상환대출 비중의 연도별 목표를 제시하고 대출자 상환능력 심사 강화방안을 제시하는 등 고민의 흔적을 드러냈다. 그러나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았고 종합관리방안으로 충분하지도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아래에서 세 가지 보완책을 제안한다.
첫째, 가계부채 총량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금 부채의 총량규제와 증가속도 조절이 꼭 필요하다. 신규 대출은 증가세의 억제가 필요하고 기존 대출은 상환부담 감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의 모색이 요구된다. 둘째, 신중하고 점진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 가계부채 규모 감축을 서둘 경우 부동산 가격의 급락이나 자영업자 줄도산 등과 같은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그래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를 추진하더라도 서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선제적 대손상각이나 가계부채 대손충당금 설정 등으로 금융회사의 가계대출 비용 증대를 꾀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기존 가계부채의 효율적 정리를 위해서 금융회사의 프리워크아웃 제도 활성화가 바람직해 보인다. 금융회사는 자신이 공급한 가계부채가 부실화되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적으로도 비용을 발생시키는 상황에서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는 금융자율화 정착을 위한 기반 구축에도 기여할 것이다.
윤석헌(숭실대 교수·금융학부)
[경제시평-윤석헌] 가계부채 속도 조절해야
입력 2015-09-16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