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늘어도 지갑 닫게 만드는 주범은 월세”… 韓銀, 가계소비 부진 배경 분석

입력 2015-09-15 02:56 수정 2015-09-15 09:15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계소비 증가율 둔화폭이 국민소득 증가율 둔화폭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많아지면 소비가 함께 증가하는 선순환이 금융위기 이후 많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월세 전환 추세가 소비 둔화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은행 조사국 이홍직 동향분석팀 차장은 14일 조사통계월보에 실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소비 부진 배경 분석’ 보고서에서 “금융위기 이후 실질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이전에 비해 연평균 1.5% 포인트 하락한 가운데 가계소비 증가율은 이보다 두 배(2.9% 포인트) 정도 큰 폭으로 둔화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2000∼2007년) 실질GNI 증가율이 4.5%일 때 가계소비 증가율도 4.6%로 비슷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인 2011∼2014년에는 실질 GNI증가율이 3.0%, 가계소비 증가율은 1.7%로 크게 차이가 났다. 약 10년 전만 해도 소득과 소비 증가율 추세가 비슷했지만 최근 들어 소비 증가율 둔화폭이 훨씬 커진 것이다. 이 차장은 “통상 소득과 소비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지속된 경기침체, 노후불안 등의 영향으로 이 관계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가계소득이 소비로 파급되는 과정이 경색돼 있는 경우 소득을 통한 ‘성장과 소비’ 간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금융위기 이후 부채 상환 부담 못지않게 전세가격 급등, 월세비중 확대에 따른 주거비용 증대가 소비여력을 상당히 약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가계소득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2000∼2007년 평균 3.3배에서 2009년 3.5배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4.5배로 급등했다.

이처럼 소득 증가를 초과하는 큰 폭의 전세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월세 전환도 가속화되고 있다. 문제는 전·월세 간 비용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세 들어 사는 가구에는 상대적 월세가격 상승이 소득감소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한은이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월세 간 주거비 격차는 2011년 ㎡당 4만2000원 월세 우위에서 올해에는 8만2000원으로 월세 우위폭이 2배가량 늘었다.

계층별, 연령별로 보면 금융위기 이후 저소득층과 고령층의 소비성향(소득대비 소비지출 비율) 감소가 두드러졌다. 저소득층인 소득 1∼2분위의 소비성향은 2010년 86.1%에서 2014년 78.1%로 8% 포인트 낮아진 반면 고소득층은 2.4% 포인트 낮아진 데 그쳤다. 60대 이상의 소비성향도 금융위기 전인 2000∼2007년 66.4%에서 2011∼2014년 58.5%로 8% 포인트가량 떨어져 하락폭이 전 연령 중 가장 컸다. 금융위기 전 60대 이상의 소비성향은 40대(67.1%)와 더불어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다. 이 차장은 “60대 이상은 직장 은퇴세대들이어서 고정 소득이 없는 대신 필수 지출이 큰 연령층인데 금융위기 이후 노후에 대한 불안 등으로 소비를 억제한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보고서는 소비여력 확충을 위해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관리함과 동시에 공공임대주택 건설, 민간임대사업 활성화 등 저소득층 주거비 부담 완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노후불안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을 해소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