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서울 한남동에서 발생한 30대 여성 피살사건은 경찰이 신고 지점으로 정확히만 출동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경찰의 실수투성이 초동대처로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살인사건이다. 가해자 박모(64)씨의 아들은 어머니의 이상행동을 감지하고 밤 9시12분쯤 112에 신고, 경찰 출동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오지 않았다. 아들이 신고하기 10분 전 박씨 집과 60여m 떨어진 곳에서 들어온 가정폭력사건으로 오인한 탓이다.
아들은 15분 뒤 재차 신고했지만 경찰은 앞서 출동했던 곳으로 다시 출동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는 사이 박씨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의 여자친구 이모(34)씨와 다투다 이씨를 흉기로 찔렀다.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결국 숨졌다. 박씨를 붙잡은 이는 때마침 다른 사건을 처리하고 부근을 지나던 다른 경찰이었다. 아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엉뚱한 곳만 헤맨 셈이다.
경찰은 “주소가 비슷해서 착각했다”고 해명했다. 이러니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거다. 경찰은 유족에게 유감을 표시하고 철저한 진상조사 방침을 밝혔다. 경찰은 신고접수 단계부터 현장 도착, 추후조치 과정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 경중에 따라 책임을 지워야 한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있어선 안 된다.
이번 사건은 허술한 신고 접수, 늑장·오인 출동 등 여러 면에서 사회를 경악케 했던 오원춘 사건과 비슷하다. 2012년 4월 수원에서 일어난 이 사건 피해자인 20대 여성은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며 112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그 절박한 시간에 7분 가까이 주소지를 물어보며 골든타임을 허송했다. 이때도 경찰이 곧바로 출동했더라면 피해자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경찰은 오원춘 사건 이후 신고접수 중 전화가 끊어지면 다시 걸어주는 콜백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112신고 제도를 개선했다. 그러나 한남동 살인사건에서 드러났듯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감사원 감사결과 콜백 시스템의 회신율 또한 8%에 불과했다.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경찰의 의식개혁이 먼저다.
[사설] 미리 신고 받고도 살인 못 막은 한심한 경찰
입력 2015-09-15 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