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반도에 형성되고 있는 기류와 맞지 않은 움직임들이 우리 군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우직한 충정의 발로라 봐주기에는 생뚱맞고, 긴 안목의 전략적 고려라기에는 득(得)보다 실(失)이 지나치게 커 보인다. 지난 11일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느닷없이 사거리 800㎞ 탄도미사일 얘기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800㎞ 미사일을 날릴 공간이 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합참 실무자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남방을 지나 이어도 남방 공해상으로 발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2012년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에 따라 가능해진 800㎞ 탄도미사일 개발이 거의 완료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발언이 나온 시점이 납득되지 않는다. 지뢰 도발 이후 남북 대치가 강대강으로 치닫다가 완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게 불과 보름 남짓 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 즈음에 장거리미사일 도발을 감행하지 않을까 촉각이 곤두선 상황인데 우리 군에서 먼저 탄도미사일 얘기를 꺼내는 건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어도 남방 KADIZ는 중국과 일본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곳이다. 이 지역에 미사일을 시험하는 것은 비록 우리 주권에 속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외교적 측면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자칫 ‘전승절 외교’로 무르익고 있는 한·중 우호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최윤희 합참의장은 “우리도 800㎞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수 있는 공간은 있다는 의미로 대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말은 ‘어’ 다르고 ‘아’ 다르다. 장성급 실무자가 ‘어아’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달 27일에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사용 징후가 포착되면 선제 타격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작계 5015’에 한·미 당국이 이미 서명했다는 군 고위 관계자발 보도가 나왔다. 당일 열린 안보학술세미나에서는 ‘참수 작전(Decapitation Operation)’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WMD를 사용할 움직임을 보일 경우 곧바로 적의 최종승인권자를 제거한다는 미군 작전 개념을 우리도 도입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밝힌 것이다. 학술세미나에서라고 하더라도 용어 자체가 살벌해 8·25 남북 합의 이틀 만에 언급할 성질이 전혀 아니다. 이슬람국가(IS)의 무자비한 도륙을 연상시켜 우리 국민들조차 섬뜩하게 받아들일 용어다.
군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군은 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비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군이 강하지 않으면 평화도 없다는 게 역설적이지만 진리다. 남북 관계는 순항하는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해빙 조짐을 타고 급하게 외투를 벗어던지라고 군에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것과 정세에 무감각한 발언으로 상대를 필요 이상 자극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북한은 혈육이자 동시에 현실적으로 적이라는 이중성 때문에 강온의 대처를 적절히 해야 한다. 너무 유하게 대하면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반면 강경일변도는 불필요한 도발이나 벼랑 끝 반발을 부른다. 두 가지 모두 한반도에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국민을 위해 전장에서 기꺼이 신명을 바칠 각오가 돼 있는 군에 감사하고, 신뢰한다. 촉빠른 혀로 긴장을 자초하는 군을 원하는 게 아니다. 설령 내일 뒤집히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남북 합의와 한·중 정상회담의 순기류를 살리는 데 집중할 때다. 때마침 군 수뇌부의 대폭 인사가 있었다. 새 수뇌부에 기대를 건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
[돋을새김-김의구] 우리 軍이 좀 이상하다
입력 2015-09-15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