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두루뭉수리 합의’… 갈등 불씨

입력 2015-09-14 03:20
노사정위원회가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사무실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합의한 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노사정 대표자들이 노사정 대화의 최대 쟁점이었던 ‘일반해고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합의했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다. 입장차가 컸던 만큼 타협안의 내용도 모호한 측면이 많아 향후 추진 과정에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저성과자 해고 기준 근로기준법 도입될까=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를 해고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징계해고나 정리해고에 대한 기준이 있지만 일반해고에 대한 기준은 없다. 정부는 그동안 이 기준의 도입이 필요한데 법개정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정부 지침으로라도 현장의 분쟁을 줄여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노동계는 지침이 도입될 경우 ‘쉬운 해고’가 만연해질 수 있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다 지난 12일 조정안에서 “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로 검토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개정 전에 “가이드라인(행정지침)을 판례 등에 기초해 조속히 만들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최종 조정안은 양측의 주장이 절충된 문장으로 마련됐다. “노사 및 관련 전문가의 참여 하에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노동계 주장을 받아들인 부분이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이는 중장기 법제화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주장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마련’ 역시 반영됐다. 노사정 최종 조정안은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두 사안이 향후 추진 과정에서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강행하고 노동계는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며 반발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근로자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 현실화?=취업규칙 변경요건 문제에 대해서는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피크제 개편과 관련,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는 데 노사정이 합의했다. 사실상 정부가 주장했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을 마련키로 한 셈이다.

다만 여기에도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절충안이 들어갔다. 일반해고 요건과 마찬가지로 추진 과정에서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법 전문가는 “협의는 명분만 있을 뿐 큰 의미는 없는 용어”라면서 “정부는 ‘대타협’이라는 명분을 얻고 노동계는 협의할 권리가 있다는 명분을 얻은 것인데, 결국 사안마다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사정 대타협은 14일 오전 11시 열리는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통과해야만 진정한 효력을 가진다. 중집에서도 이 두 사안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노사정 관계자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이 워낙 민감하고 갈등이 심한 사안인 만큼 노동계와 정부의 입장을 절충해 합의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면서 “노동계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만큼 14일 중집에서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