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A씨(여)에게 이혼 소장(訴狀)이 도착했다. 22년 전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린 남편 B씨가 보낸 거였다. 이혼 요구와 함께 남편은 A씨와 두 자녀가 살고 있던 시아버지 명의의 아파트를 자신이 상속받아 경매에 넘겨버렸다. A씨와 자녀들은 하루아침에 길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A씨는 대학에서 만난 B씨와 1985년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시부모는 ‘A씨의 가정환경이 불우하다’며 결혼을 반대했고, 부부는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A씨가 아이 둘을 낳자 시부모는 비로소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줬지만 며느리로는 좀체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 B씨는 이를 중재하기는커녕 되레 방황했다. 91년 집을 나가더니 다른 여성과 새 살림을 차린 뒤 아이까지 낳았다. 그 사이 A씨는 시부모와의 관계를 개선해나갔다. 병에 걸린 시아버지를 수시로 간병하며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위독해지자 남편은 A씨에게 이혼을 청구했다. 별거에 들어간 지 22년 만이었다. 남편은 “선진국 이혼법은 결혼이 파탄에 이른 책임과 관계없이 혼인관계가 파탄나면 이혼을 인정하는 ‘파탄주의’ 추세에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유책주의’ 입장에서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B씨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B씨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는 등 부양·성실의무를 저버렸다”며 “아내와 두 자녀는 ‘축출(逐出) 이혼’을 당해 참기 어려운 경제적 곤궁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유책 배우자 백모(68)씨가 아내 김모(66)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의 최종 판결을 내린다. 65년 이후 지속돼온 ‘유책주의’를 유지할지,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새 판례를 내놓을지를 놓고 지난 6월 공개 변론을 열기도 했다. 대법원이 파탄주의를 인정할 경우 향후 이혼소송의 증가 등 사회 전반의 변화가 예상된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딴살림 차리고 처자식 내쫓은 남편… 가정법원 “이혼 안된다” 청구 기각
입력 2015-09-14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