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탑승, 정답은?

입력 2015-09-14 02:12

1966년 서울 중구 옛 조흥은행 본점에 국내 첫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됐다. ‘움직이는 계단’은 아이들의 놀이기구였다. 당시 인근 초등학교에 다닌 강모(56·여)씨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매일 빌딩을 찾았다. 경비원 눈치를 봐가며 1, 2층을 오르락내리락했다”고 회상했다.

1990년대 고층빌딩이 급증하며 보편화된 에스컬레이터는 이제 도시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전국에서 2만7886대(지난해 기준)가 바쁜 현대인의 걸음을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여전히 혼란스럽다.

안내판에는 ‘걷거나 뛰지 말라’고 적혀 있는데 사람들은 습관처럼 걷거나 뛰는 이들을 위해 한쪽 공간을 양보한다. ‘손잡이를 잡으라’고 하지만 과연 깨끗할지 찜찜하다. 반세기 가까이 흘렀는데도 에스컬레이터 ‘탑승문화’는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한 줄 서기? 두 줄 서기?=1998년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는 지하철 승객의 원활한 이동을 돕는다며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 운동을 벌였다. 왼쪽을 비우고 오른쪽에 붙어 서서 바쁜 사람들이 왼쪽 공간을 이용케 하자는 캠페인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한 줄 서기는 빠르게 확산됐다.

이렇게 굳어져 가던 에스컬레이터 탑승문화는 2007년 격변을 맞는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과 한국철도공사 등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빈발하자 ‘두 줄 서기’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왼쪽 공간을 비우지 말고 한 계단에 두 명씩 서서 타자는 거였다. 2009년에는 국민안전처가 “걷거나 뛰지 말고 손잡이를 잡으세요”라는 구호를 내놨다.

당국의 ‘오락가락’ 캠페인에 시민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은 서둘러 출근하는 직장인과 대학생으로 북적였다. 다들 으레 그렇다는 듯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을 비우고 오른쪽에 섰다. 대학원생 이모(27·여)씨는 “두 줄로 서서 가라는 포스터를 본 적이 있지만 다들 왼쪽을 비워두는데 왼쪽에 서 있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정답은 걷지 않고 손잡이 잡기?=2010년 이후 국내 에스컬레이터 사고는 399건이었다. 넘어지는 사고(315건)가 대부분이다. 신발 끈 묶다가, 걸어서 내려가다가 넘어지는 등 ‘불안정한 자세’와 ‘걷다 미끄러짐’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국민안전처는 지난달 27일 에스컬레이터 안전문화 개선 합동토론회를 열어 한 줄 서기도, 두 줄 서기도 아닌 ‘걷거나 뛰지 않기’와 ‘손잡이 잡기’를 새로운 탑승문화 캠페인 내용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바쁜 도시인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손잡이를 붙들고 가만히 서 있을 수 있을까. 9일 저녁 퇴근길에 서울 지하철 9호선 당산역에서 만난 홍모(31)씨는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1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서서 내려 가본 적이 거의 없다. 다들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손잡이 잡는 걸 꺼리는 사람도 많다. 고나현 패트롤맘 중앙회장은 “에스컬레이터 구조상 손잡이 소독이 쉽지 않다. 승강기 안전교육을 할 때면 유치원생조차 손잡이가 더럽다고 한다”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