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행복공동체는 정말 불가능할까

입력 2015-09-14 00:48

만족감(효용)은 신고전파경제학 소비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물건을 사는 이유가 만족감 충족에 있고 상품 가격은 만족감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지불의사 수준(한계효용가치)에서 결정된다. 철 지난 고급브랜드 상품이 떨이가 됐더라도 살 마음을 자극 못하면 값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흔히 생산자(공급자)의 비용 개념은 무시된다.

생산자가 소비자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것이나 소비자가 기존 제품과 비슷한 성능의 신품을 사고 싶어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구매는 철저하게 소비자의 주관적인 관심에 달렸다.

마음이 주관적인 것처럼 효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제품에 대해서도 생각 여하에 따라 효용가치가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몇 만원짜리 코스요리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김밥 한 줄에 마냥 행복해하는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배경이다. 만족감을 행복감으로 바꿔 부른다면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경제학도 시절 효용이론에 탄복했던 것도 바로 이 ‘마음먹기’가 갖는 의미 때문이었다. 시장경제의 기초원리가 마음을 둘러싼 가치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작은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닌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문제를 그리 주목하지 않은 듯했다.

어쨌거나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예컨대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엔 1인당 GDP 2000달러 수준의 부탄이 늘 상위에 올라 있다. NEF 발표는 주민들에 대한 삶의 만족도 조사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 때문에 유엔은 2013년부터 1인당 GDP, 건강수명, 사회적 지원, 인생 선택의 자유도, 부패, 관용도 등을 수치화해 세계행복도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유엔 행복도 조사도 결과는 비슷하다. 올 158개국 중 경제대국 미국 일본 독일은 각각 15, 46, 26위에 불과하다. 한국도 겨우 47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상위권은 1위인 스위스를 비롯해 북유럽군(群)이 돋보인다. 행복은 주머니 수준만으로 결코 채워지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싱가포르 사례가 주목된다.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2007년과 2011년 각각 일본과 미국을 앞질렀고 이제는 6만 달러를 내다볼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올 유엔 발표에서는 24위를 기록했으나 갤럽이 2012년 발표한 일상생활 행복도 조사에서는 148개국 중 꼴찌였다. 객관적 지표로는 상위권인데도 구성원들은 격심한 경쟁사회의 압박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작은 것에 큰 만족을 느낄 때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론은 사실상 잊혀졌다. 성장이 주춤거리면서 현실은 더욱 왜곡된 모습으로 치닫고 있다. 그 이유는 먼저 우리가 금욕주의의 구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작은 것에서 큰 만족’이 그간 종종 지배자에 의해 강요돼온 점이다. 강요된 만족은 당연히 투쟁을 불렀다. 투쟁은 대립·경쟁심을 낳고 무엇보다도 사회구성원 간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다’는 가치의 공유를 막았다.

우리에겐 행복사회로 갈 수 있는 길이 차단된 듯 보인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강조하고 청년실업 해소를 강조하고 있지만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행복공동체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이상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그간의 시장지배자인 기업과 정부가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이는 목소리 큰 노조에도 똑같이 요청되는 문제다.

시장경제의 잊혀진 속내를 들춰내 모두의 공유가치로 재현하는 일이 시급하다. 비록 우리가 구도자는 못되더라도 옳은 방향을 함께 추구하는 지혜는 가지고 있다고 본다. 차제에 비정규직·장시간노동 해소가 그 변화의 상징이 됐으면 한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