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유호열] 이제는 통일청사진 제시해야

입력 2015-09-14 00:20

분단 70년 동안 남북한은 단절되고 대립하면서 서로 다른 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 이후 통일에 대한 기대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통일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무관심하다. 특히 젊은세대의 북한에 대한 이해와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인식 등은 미흡한 수준이다. 한반도 통일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 국민 사이에 공감대가 남아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통일 준비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선 통일의 비전과 목표가 분명히 제시돼야 한다. 실제 우리의 공식 통일 방안인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이 1989년 여야 만장일치로 채택됐지만 1단계 화해협력과 2단계 남북연합을 거쳐 마지막 3단계인 통일국가 형성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않았다. 보수층에서는 흡수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압도적이었고, 진보적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과도한 배려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이 국가연합을 통해 통일국가를 건설할 만큼 긴밀한 관계가 되면 상호 합의 하에 통일헌법을 제정하되 그 통일헌법이 어떠한 방향과 내용을 담을 것인지는 그때 가서 후배 세대들이 결정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역대 정부도 우리 헌법정신에 따라 우리 주도의 통일을 이룩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통일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등을 중심 가치로 구현한다는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천명했지만 다만, 이를 구체화하거나 정책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분단 이전 상황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민족 동질성에 대한 공감대가 약화됨으로써 통일에 대한 당위성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의 비전, 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루거나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통일에 대한 국내외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의 이러한 통일 구상에 대해 국내외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냄으로써 통일을 실현해 내기 위해서는 통일의 방향, 통일의 원칙과 기조는 무엇이며, 그러한 통일을 어떻게 달성하며, 통일 이후에 어떻게 주변 국가들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최근 들어 제도통일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목함지뢰 도발로 야기된 한반도 긴장상태에서 자신들의 최고 존엄 유지와 제도통일 반대를 정당화의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제도통일과 흡수통일을 동일시하며 이는 북한 체제 붕괴와 자신들의 몰락을 동일시함으로써 통일보다는 현재와 같은 분단체제의 영속화를 꾀하는 것이다.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남북한 특수관계를 파기하고 대신 2체제 2국가를 공식화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일제 잔재 청산을 빌미로 표준시마저 30분 늦추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남북한의 분리와 차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분단의 영속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일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주목하고, 다음달 워싱턴에서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도 한반도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공짜로 주어질 선물이 아니고, 저절로 이루어질 수도 없는 중차대한 과제다.

이에 대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제 그 목표와 방향을 통일의 비전, 청사진으로 제시해야 한다. 비전이 있어야 우리 국민은 물론 북한과 국제사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협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유호열(고려대 교수·북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