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진영이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 전쟁’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초전이었다. 교육부가 국정화 방침을 공식 발표하면 전면전으로 확대된다. 2013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과 민족문제연구소의 근현대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논란에 이은 2차전 성격을 갖고 있다. 승리한 쪽이 가져갈 전리품은 곧 유권자가 되는 고교생들의 ‘역사인식’일 것이다. 교육 문제를 떠나 정치세력 간 파워게임이 돼버린 터라 깊이 있는 토론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이것만은 막는다” vs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한다”=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10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다른 건 몰라도) 국정화만은 말라”고 요구했다. 강행하면 박근혜정부의 4대 개혁 중 하나인 교육개혁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빈말은 아닌 듯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란 대응기구를 당 차원에서 꾸렸다. 국회 일정 전체를 보이콧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꼭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감에서 “역사는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싸움의 명분은 ‘미래세대의 바른 역사인식’이다. 하지만 권력투쟁의 성격이 강하다. 교육 이슈들이 뒷전으로 밀려 언급조차 안 된 국감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역사인식보다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 문제들이었다. 예컨대 학업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은 올해 증가세로 돌아섰다. 안전문제·학교폭력·성폭력 등에 학교 현장이 들끓고 있다. ‘국가 교육의 설계도’라는 교육과정은 마무리 단계다. 수능은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필수과목이 최소 7개(국어·수학·영어·한국사·공통과학·공통사회·제2외국어 등)다. 학생들은 단 하루에 7개 과목 시험을 치러야 할 처지다.
◇보수의 ‘설욕전’, 진보의 ‘방어전’=왜 이렇게 한국사 교과서에 집착하는 걸까. 보수 진영은 좌파가 역사학계를 장악했으며, 곧 유권자 지위를 얻게 되는 고교생들을 ‘좌파 코드’로 세뇌시킨다고 여긴다. 새누리당 서용교 의원은 국감에서 ‘2013 고교 한국사 집필자 현황’을 공개하며 교학사를 제외한 7종 교과서의 집필자 53명 중 36명(67.9%)이 진보 성향 역사연구모임이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몸담은 학자·교사였다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내놓았던 교학사 교과서는 진보 진영의 검증 공세와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모든 학교에서 외면받아 체면을 구겼고, 국정화 논의가 고개를 든 것도 이 무렵이다.
진보 진영은 정부와 여당의 교과서 장악 움직임을 2000년대 초반 시작된 ‘역사 쿠데타’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1945년 광복이 아닌 1948년 건국(건국절)으로 전환시키려는 움직임이 교학사 교과서와 국정화 시도로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건국절이 정통성을 인정받으면 반공에 앞장선 친일파의 과오가 희석된다는 논리다. 국정 교과서로 친일보다 반공, 독재보다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어 가르치려는 음모로 본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유력 차기 주자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을 거론한다. 김용주 전 회장은 친일 의혹이 제기됐었다. 박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건국 67주년’을 강조하고, 김 대표가 국정화 시도의 전면에 나선 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도경 전수민 기자 yido@kmib.co.kr
[‘한국사 국정화’ 논란] 보수 vs 진보 ‘역사전쟁’
입력 2015-09-12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