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이겼다… 장애·비장애아 통합교육 ‘물빛어린이집’ 폐원 위기 넘겨

입력 2015-09-12 02:33

10일 오후 8시 서울 은평구 수색동 구립 물빛어린이집에 엄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일을 마치고 온 맞벌이 엄마가 대부분이었다. 정장 차림의 아빠도, 손주를 맡긴 할머니도 있었다. 학부모 60여명은 비장한 표정으로 어린이집 1층 교실 바닥에 앉았다. 아이들은 보육교사와 함께 2층 교실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자야 할 시간이었지만 엄마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는 30일 어린이집 운영을 종료하겠다는 은평구의 공문이 지난 4일 마침내 날아온 터였다. 이날 모임은 엄마들의 요구로 마련된 은평구와의 간담회 자리였다.

물빛어린이집은 장애·비장애아 통합교육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신뢰가 높은 곳이다.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자 은평구는 폐원 방침을 밝혔다(국민일보 6월29일자 10면 참조). “대체 부지를 찾기 어렵고 폐원하지 않으면 등하굣길이 위험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장애아 맡길 곳을 찾기 어려운 엄마들, 장애아와 어울리며 생각이 성숙해진 아이가 대견했던 엄마들은 이 어린이집을 포기할 수 없었다. 민원을 넣고 구청 항의방문도 여러 차례 했다. 어린이집을 옮길 대체 부지를 직접 찾아 구에 제안도 해봤다. 하지만 은평구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만 반복했고, 갑작스럽게 이달 말로 폐원 날짜가 정해졌다.

한 학부모는 “아이 받을 때는 아무 말 안하더니 갑자기 한 달 뒤 문을 닫는다고 하면 어디로 가란 말이냐”고 했고, 다른 학부모는 “구를 믿고 맡겼는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폐원 대책은 부실했다. 구는 지난 4일 학부모들에게 공문으로 폐원 결정을 알리며 ‘입소 가능 구립 어린이집 현황’을 함께 보냈다. 10일까지 어디로 옮길지 알려 달라고 했다. 새로 맡길 곳을 알아보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다. 구가 보낸 어린이집 현황도 실제와 달랐다. 공문을 받지 못한 학부모도 있었다. 학부모들은 “설사 옮긴다 해도 거리가 멀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폐원 다음 날 당장 아이들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이 지역 재개발 논의는 2008년 시작됐다. 2013년에는 시행인가도 났다. 대체 부지를 구하는 등 미리 대책을 준비했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지적에 구 관계자는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평행선을 달리던 이날 간담회는 3시간이 지나 오후 11시가 돼서야 끝났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윤수 은평구 보육지원과장은 “30일로 예정된 폐원 결정을 취소하겠다. 대책을 마련하고 학부모들과 논의해 폐원 시점을 다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은평구는 11일 “학부모들의 입장을 반영해 내년 2월까지 폐원을 늦추겠다”고 밝혔다. “아이 안전은 학부모가 제일 잘 지킨다”며 “최소한 올해가 끝날 때까지는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해 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한 지자체가 백기를 든 셈이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