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가 테러 14주기를 맞아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해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IS의 세력 확장으로 입지가 좁아진 알카에다의 절박한 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알카에다는 물론 IS와도 맞서왔던 미국 입장에서는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IS 대원 4000여명이 난민 틈에 숨어 유럽에 잠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0일(현지시간) 미국 ABC방송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9일 인터넷을 통해 낸 음성메시지에서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칼리프’(이슬람 신정일치 지도자)가 아니라 ‘선동가’라고 비난했다. 그는 알바그다디가 전 세계 무슬림의 인정을 받지 않았으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알카에다가 이처럼 IS의 지도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비난한 것은 처음이다.
알자와히리는 “무슬림은 알바그다디나 IS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면서 “그간 지하디스트(이슬람 전사) 내부 분열을 우려해 알바그다디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제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IS가 알카에다의 세력권이던 북아프리카까지 잠식하면서 이 지역의 무장조직들이 잇따라 IS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점을 의식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IS와 알카에다는 지난 4∼5일에도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 산하의 무장조직 ‘알안사르 부대’가 자신들에 충성을 맹세했다며 상반된 성명을 내놓는 등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매튜 올슨 전 미국 국가대테러센터장은 “이것은 알카에다와 IS 간의 분열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두 테러단체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ABC방송에 말했다. 마이클 헤이든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이들의 균열이 미국에 이로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곧바로 IS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알자와히리는 “IS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라크 또는 시리아에 있었다면 십자군(서방)과 시아파, 이라크 정부에 함께 맞설 것”이라고 밝혀 서방세력과의 싸움에서 IS와 연대 가능성도 열어놨다. 또 이날 공개된 45분짜리 메시지가 이미 지난 7월 30일 사망이 공식 확인된 탈레반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에 대한 충성을 반복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개월 전 녹음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IS를 위해 일하는 시리아 정보요원은 IS 대원 4000여명을 난민으로 위장해 유럽에 성공적으로 잠입시켰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익스프레스가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BuzzFeed)를 인용해 11일 보도했다. 시리아 정보요원은 “(IS 대원이 유럽에서 무슨 일을 할지) 기다려보라”고 암시하기도 했다.
신문은 IS 대원들이 난민이나 이주자들의 루트를 따라 터키 국경을 통과한 후 배편으로 그리스로 건너가 유럽으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IS 소속 정보요원은 IS 대원의 위장 잠입은 미국 주도하의 연합군 공습에 대해 서방을 상대로 보복 공격하려는 광범위한 계획의 시작이라면서 “시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알카에다, IS에 선전포고?… 美 ‘어부지리’
입력 2015-09-12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