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일본이 앞 다퉈 빠른 연산속도를 자랑하는 ‘슈퍼컴퓨터’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도 예산안에 처음으로 슈퍼컴퓨터 예산을 포함한 것을 시작으로 수입에 의존하던 슈퍼컴퓨터를 국내 기술로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10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한국형 슈퍼컴퓨터를 위한 원천기술 개발 예산 20억원이 포함됐다. 슈퍼컴퓨터란 막대한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로 자연현상을 분석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거나 안보, 신약개발 실험, 항공기, 천문학 연구, 원자력발전 등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 곳에 쓰인다. 이번에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처음으로 슈퍼컴퓨터 예산이 책정되게 된다.
국내에서 슈퍼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곳은 기상청,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삼성전자 등인데, 전량 수입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슈퍼컴퓨터 개발에 뛰어들어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슈퍼컴퓨터 성능 분석 기관인 ‘톱스500’(tops500.org)이 지난 6월 공개한 순위에 따르면 중국의 ‘톈허-2’가 2013년부터 처리 속도 1위(3만3862테라플롭스)를 지켜오고 있다. 테라플롭스는 1초에 1조회의 연산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톈허-2의 경우 초당 3경3860조번 연산을 하는 셈이다. 2위는 미국의 타이탄(1만7590TF/S), 3위는 미국의 세콰이어(1만7173TF/S), 4위는 일본 K컴퓨터(1만510TF/S) 순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슈퍼컴퓨터 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 7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1초에 연산을 100경회 수행하는 슈퍼컴퓨터를 10년 안에 만든다는 내용의 ‘국가 전략 컴퓨팅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슈퍼컴퓨터 기술 개발이 다른 국가에 비해 뒤처진 것은 아직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장비 1호기를 구입·설치하는 비용만 600억∼900억원에 달하고 전기 요금도 연간 30억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날씨예보와 기초과학분야 연구, 반도체·차량 시뮬레이션 개발 등 분야에서만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슈퍼컴퓨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관련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빅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관련 산업 경쟁력이 강화된다. 게다가 중국이 슈퍼컴퓨터를 수출 제한품목에 선정하는 등 기술 보안에 나서고 있어 원천 기술 확보가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강성모 총장을 중심으로 한 ‘초고성능 컴퓨팅 발전 포럼’이 지난 7월 출범했다. 국내 컴퓨터 전문가들이 슈퍼컴퓨터 기술개발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 정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포럼 소속 카이스트 윤찬현 교수는 11일 “국내 ICT(정보통신기술) 역량이 뛰어나도 슈퍼컴퓨터 관련 독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으면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ICT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초고성능 컴퓨팅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슈퍼컴, 中·美·日 ‘그들만의 리그’… 명함도 못내미는 韓
입력 2015-09-12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