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공연예술의 거장 로버트 윌슨(74)의 작품 두 편이 10월 나란히 한국을 찾는다. 15∼17일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무대에 오르는 연극 ‘셰익스피어 소네트’와 23∼25일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의 시즌프로그램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다. 압도적인 미장센만큼 제작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그의 작품 2편이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공연 애호가라면 그의 이름만 듣고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윌슨은 이미지연극으로 세계 공연예술의 한 흐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0년대 말 깜짝 등장해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구미 주요 극장과 오페라하우스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 ‘바다의 여인’이 처음 소개된 이후 2010년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와 2011년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이 공연된 바 있다. ‘바다의 여인’은 원래 1999년 제1회 서울연극제 개막작이었지만 당시 극장 조건 미비로 그가 연출을 거부하면서 취소됐다가 이듬해 다시 올릴 수 있었다.
미국 출신인 그는 공연 관련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뉴욕에서 건축과 미술을 공부하는 한편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공연예술을 흡수하면서 자신만의 연출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10대 시절 언어장애를 겪었던 그는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언어보다 이미지를 통한 의사소통에 관심을 가졌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언어의 해체와 거부를 추구하던 초기 작업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뉴욕타임스가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76년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공동창작하고 연출한 것으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일대기를 담았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기차나 우주선, 수학서식 등의 이미지와 반복적인 음악으로 표현돼 있는 게 특징이다. 5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중간휴식 시간이 없어 관객 스스로 조용히 나갔다 와야 한다. 80년대 말을 끝으로 공연되지 않았던 이 작품은 2012년 3월 다시 제작돼 세계 투어를 돌았으며 한국 공연을 끝으로 세트가 폐기된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텍스트와 언어에 유연해진 그의 최근 모습을 잘 보여준다. 베를린 앙상블에서 2009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14행 1연으로 이루어진 유럽 서정시) 발간 400주년을 맞아 초연됐다. 그는 베를린 앙상블에서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9편을 연출했으며 이 작품은 6번째다. 사랑에 대한 시의 전범으로 불리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54편 가운데 짝사랑의 고통, 인간의 삶과 죽음, 시의 영원성을 다룬 25편을 골라 무대화했다.장지영 기자
한국 오는 거장 로버트 윌슨의 두 명작은… ‘해변의 아인슈타인’ ·‘셰익스피어 소네트’
입력 2015-09-14 02:02 수정 2015-09-14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