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체·추상조각 원류를 찾아서… 학고재, 김정희 글씨·김종영 조각 비교 전시 눈길

입력 2015-09-14 02:40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과 불각의 시공’ 전시회 전경. 오른쪽 김종영의 브론즈 조각 작품 ‘68-1’ 너머로 김정희의 글씨 ‘순로향(순채국과 농어회가 있는 고향이라는 뜻)’이 보인다. 시대를 달리한 두 예인의 작품에서 비대칭이 주는 절묘한 균형감각을 엿볼 수 있다. 학고재 제공

추사체에서 추상조각의 원류를 찾아 나선 보기 드문 전시가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우성 김종영(1915-1982)은 각각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자 대서예가, 20세기 한국 추상조각의 개척자이자 교육자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과 불각의 시공’전은 시대와 장르를 달리한 두 예술가의 예술관에서 공통점을 추출하고 시각화하는데 성공했다. 전시 기획자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의 실력과 감각이 빛난다.

김정희의 ‘불계공졸(不計工拙)’은 대표작 ‘세한도’가 보여주듯 고졸함의 미학이다. 김종영의 ‘불각(不刻)’은 가급적 인위성을 배제하고 돌이면 돌, 나무면 나무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추사 정신의 조각적 실현이다.

김정희의 글씨에서는 현대의 세련된 디자인조차 넘보기 힘든 ‘구조의 미’와 견고한 조형성이 발견된다. 김종영의 추상조각에서는 추사 글씨의 고졸성이 배어 있다.

비대칭이 주는 하모니가 또한 둘의 공통분모다. 추사 글씨를 보면 균일하게 그어 내리는 게 굵게 내리다가도 가늘게 삐치는 등 파격이 있다. 한 서첩에서도 비석 글씨의 칼칼함과 서첩 글씨의 단아함을 함께 엮는다. 종이와 붓이 발견된 중국 한나라 이전의 비석글씨를 연구하고 이를 우리 것에 녹여낸 결과다. 이는 김종영의 조각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조각 형상은 좌와 우, 위와 아래가 제각각이면서도 하모니를 이룬다. 그는 당시 조각가들이 인체를 다루는 것과 달리 추상에서 길을 찾았지만 그 뿌리는 동양의 정신성에서 찾았다.

요즘 전시에서 서예가 사라졌다. 서예가 갖는 조형적 미, 즉 미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 전통 서예의 맛과 멋에 모처럼 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