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히딩크’가 박근혜정부에서 영입될 것인가. 정부는 재공모 절차에 들어간 국립현대미술관장직을 외국인에게도 개방하겠다는 입장을 지난달 말 분명히 했다. 이 미술관의 법인화를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국민일보는 미술계 생태계를 뒤바꿀 메가톤급 현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현직 국·공립미술기관장(4명), 평론가·기획자(5명), 화랑 대표(4명), 작가(4명) 등 분야별 대표주자들이 응했다.
외국인 관장 : 압도적 반대 속 화랑도 글쎄…
놀랍게도 대부분 화랑을 포함해 현직 미술관장 및 고위 관리자, 평론가, 작가들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 관장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메이저 화랑은 “글로벌시대 해외교류를 확대하고,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관장 등 4명의 미술관 관계자 중에서 1명만이 “현재 상황으로서는 영입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대 측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갖는 상징성을 이유로 들었다. A관장은 “7800여점의 소장품과 30만점에 달하는 아카이브는 한국의 근현대미술 관련이 중심이다. 이들 물적 자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외국인 관장이 미술관 운영을 하는 것은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정준모 아시아문화전당 전시감독은 “국립미술관은 미래의 한국전통을 만들어가는 곳이며 거기에 글로벌리즘을 당해낼 수 뒷심이 있다”며 한국인 관장론을 주장했다. 김찬동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장도 “글로벌 네트워킹을 확대하기 위해 외국인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명분은 좋지만, 한국미술의 아이덴티티(정체성) 정립이 선결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최병식 교수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립미술기관이 여러 개일 경우 말고는, 유일 국립미술관 관장을 외국인이 맡는 사례는 없다”고 단언했다. 또 미술계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조덕현 작가는 “서울, 과천 등의 전시 공간에 흩어진 인력 간의 갈등 조정이 중요한 시점이라 외국인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고, 나현 작가는 “임기 3년이다. 한국말, 한국현대미술을 이해할 듯 할 때쯤 임기가 끝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노순택 작가는 외국인이 안 될 이유는 없지만 추진 과정이 깔끔하지 않다는 시각을 보였다. 하지만 H 작가는 “시장은 그렇지 않은데 국립기관에서 여전히 학벌 중심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외국인 관장은 시정의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법인 전환: 대부분 찬성 속 작가들은 반대
미술관 대표, 비평가, 화랑 등에서는 재정자립과 독립적 운영을 위해 법인화를 해야 한다는 지지파가 많았다. 하지만 작가들은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법인화 시 정부의 예술지원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B관장은 “한국현대미술은 이제 국제적 맥락 하에서 창의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위계적 조직으로 한계가 많다”며 법인 전환의 불가피성을 설파했다. 평론가 최열씨는 “(관장 공모 결과 무효화 등)일련의 과정이 증명하듯 철저하게 (정부의) 통제를 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책임운영기관이라는 이유로 학예사를 비정규 계약직으로 채워 넣어 미술관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해결책으로서 법인화를 제안했다. 법인 이사회 구성에선 정부 측 인사를 배제해야 하며, 모든 이사들이 매년 고액의 기부금을 쾌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준모 감독은 “정부가 법인화 이후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화랑 대표들도 법인화 시 전시기획, 인사 등에서 정부 입김을 벗어나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찬성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관장 공모 경험이 있는 Y씨는 “법인화하더라도 ‘국립’인 한 주무관청인 문체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오히려 예술의전당처럼 수입 확대를 위해 기획전시는 없이 대관만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박래경 한국큐레이터협회 명예회장은 “우리 풍토에는 맞지 않다”며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의 부분별한 미술관 건립에 따른 비용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권한을 키워 지방 분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작가들 사이에서 법인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 2014년 올해의작가상을 받은 노순택 작가는 “국·공립미술관은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며 “효율성, 재정자립이 중요하지만 이게 만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나현 작가는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그래서 대중들이 기피한다. 수익성을 중시하다보면 교과서 미술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국립현대미술관 두 가지 이슈 ‘외국인 관장’ ‘법인화’ 전문가 의견은?
입력 2015-09-14 02:42